극단 신시 뮤지컬「라이프」,뉴욕 후미진 인생들 이야기

  • 입력 1998년 6월 29일 07시 56분


극단 신시가 공연중인 ‘라이프(Life)’는 어른들을 위한 뮤지컬이다. 뉴욕거리의 창녀들이 등장해 진한 성적인 농담을 거리낌없이 쏟아내서만은 아니다. 후미진 인생, 삶의 단맛 쓴맛을 고루 맛본 어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랑과 배신 우정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월남전의 영웅이었지만 고향에 돌아와서는 그저 한량에 불과한 플릿(조남희)과 그를 사랑하는 여인 퀸(박영미). 성공을 위해 무작정 뉴욕으로 향했지만 살기위해 퀸은 매춘에 나서고 플릿은 마약에 중독돼 찌들어 간다.

플릿은 악덕 매춘업자 조조(허준호)와 한통속이 돼 시골서 갓 올라온 처녀 메리를 에로 쇼에 출연시켜 떼돈을 벌 궁리를 하고 그 와중에 퀸과도 멀어진다. 퀸은 뉴욕의 번화가 타임스퀘어를 지배하는 포주 멤피스에게서 달아나려하지만 “플릿을 죽이겠다”는 협박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사랑과 돈 그 무엇도 얻지 못한 뉴욕생활. 마침내 목숨을 걸고 이 현실을 탈출하려는 퀸에게 유일한 친구는 늙은 창녀 소냐(전수경). 소냐에게서 고향으로 가는 차표와 가방을 건네받고 떠나려는 찰나 플릿이 나타나 용서를 빌며 “함께 떠나자”고 애원하지만 그 순간 그들을 덮치는 멤피스의 일당. 플릿은 총을 꺼내드는데….

96년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공연된 ‘라이프’는 97년 토니상 12개부문에 노미네이트 돼 음악상 등 3개부문을 수상한 화제작. 작곡자이자 극본을 쓴 시 콜멘은 출연배우 대부분을 흑인으로 설정해 흑인 솔의 정서와 재즈 창법을 한껏 살려야 하는 노래 스물두곡을 만들어냈다.

주인공 퀸 역을 맡은 박영미는 라이브 전문 가수. 힘있는 흑인 창법을 소화해낼 수 있는 인물로서 기용됐다. 소냐역의 전수경과 함께 라스트신에서 부르는 노래 ‘내 친구(My Friend)’는 작품의 백미.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흑인정서가 강하게 배인 원곡을 소화해내기에 역부족.반주를 맡은 11인조 T.M.I밴드의 매끄러운 연주가 가창력 부족을 상당 부분 커버해준다.

뚱보 흑인창녀 치치역을 맡은 개그우먼 이영자는 작품의 감초. 흥행을 위해 고명처럼 출연하는 ‘TV스타’가 아니라 뮤지컬 배우로 재탄생하기 위해 공들인 흔적이 무대위에서 빛난다. 비열한 조조역의 허준호는 경쾌한 춤솜씨 덕분에 박수를 받는다.

12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평일 오후7시반(월요일 휴관) 토,일 오후3시 6시반 02―580―1234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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