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노희경이 누구지』… PC통신 와글와글

  • 입력 1998년 5월 11일 09시 24분


스타가 나오는 드라마도 아니다. 시청률이 높지도 않다. 그런데도 열성팬들의 모임이 생기고 PC통신에는 칭찬의 글들이 연일 올라온다.

이 희한한 TV드라마를 쓰는 사람은 누구일까.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거짓말’의 작가 노희경(33).

“처음에 PC통신의 반응을 보고 시청률 1위인 줄 알았다”는 그는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고 열연하는 연기자들이 안쓰럽고 고맙기만 하단다.

노희경의 드라마를 단연 돋보이게 하는 것은 가슴을 파고드는 감성적 대사다.

“이곳에 와서 한 고백은…(밖에)나가면 그 죄를 묻지 않는다며?…널, 사랑한다. 아멘.”

지난주 주인공 성우(배종옥)가 성당에서 연하의 유부남인 준희(이성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한동안 화제가 됐을 정도로 인상깊었다. 김수현류의 따발총같은 감각적 대사와 또 다른 맛이다.

‘거짓말’에서는 유부남의 불륜, 엘리트와 밑바닥 인생의 사랑, 중년의 사랑 등이 씨줄 날줄로 짜여있다. 자칫하면 빠져버릴 상투성의 함정이 곳곳에 포진해있지만 노희경은 노련한 솜씨로 경계와 편견의 벽을 깨뜨리는 사랑의 힘을 억지스럽지 않게 풀어서 보여주고 있다.

경험많은 어른의 눈으로 인물들을 그려내지만 정작 노희경은 데뷔한 지 2년밖에 안된 신인이다.

단막극이 아닌 ‘대작’을 쓰는 것은 96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MBC),‘내가 사는 이유’(〃)에 이어 세번째.

“인생의 탄탄대로를 걸었다면 아마 드라마를 못썼을 거예요. 드라마를 쓰고나서부터 내가 가난했고 문제아였다는 것, 심지어 내게 상처를 준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감사하는 마음이 드네요.”

대학(서울예전 문예창작과)다닐 때는 방학마다 봉제공장에 가서 미싱 보조로 일했다. 80년대 많은 대학생들이 그랬듯 노동운동을 위한 ‘현장진출’이 아니라 그냥 친구따라 아르바이트하러 나선 것이었다. 졸업 후에는 마포에서 8개월 동안 포장마차 장사를 해보기도 했다. 이런저런 경험속에서 관찰한 사람들의 표정이 그가 쓰는 드라마의 소중한 밑천이다.

방송작가로 살면서 노희경이 세운 인생 목표는 “애들을 상대로 한 트랜디 드라마는 쓰지 않겠다”는 것.

“TV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할머니나 서민층처럼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이에요. 드라마를 쓰는 것은 내가 이들을 보듬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소설? 누가 내 작품을 돈주고 사봐야 하는 건 안할래요.”

〈김희경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