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방송 개국35돌/인터뷰]한승헌 감사원장서리

  • 입력 1998년 4월 24일 19시 49분


한승헌(韓勝憲)감사원장서리는 7년 가까이 동아방송(DBS)반환소송의 변호인으로 일해오다 감사원장서리에 취임하기 직전 변호인 사임계를 냈다.

그는 최근 “(감사원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내가 동아방송 문제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인터뷰 요청을 고사했다. 다음은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온 나라가 소용돌이쳤던 95년 동아일보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플러스(11월16일자)에 그가 기고한 글의 요지. 이글은 동아방송 소송변호를 맡았던 한원장서리의 이재판에 대한 소신을 명확히 밝혀주는 것이다.

88년 6공초 국회 문공위의 언론청문회장. 80년 언론통폐합 때 보안사(당시 사령관 노태우소장)가 언론사 사주들로부터 언론사 포기각서를 강압적으로 받아낸 것은 ‘강도죄’에 해당되지 않으냐는 열띤 논의가 있었다.

그때 한 언론사 사주는 “보안사 지하실로 끌려가 언론사 포기각서를 쓰라는 강요를 받았다. 항거해 봐야 소용도 없고 도장 안찍고는 나올 수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참고인으로 출석한 필자는 한 의원으로부터 “그렇다면 (보안사당국자는) 형법 제333조의 강도죄에 해당되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연일 생방송으로 중계를 하는 TV카메라와 이미 6공의 대통령이 되어 있는 노태우씨를 의식하면서 “정말 항거할 수 없는 상황하에서 그런 일이 이뤄졌다면 강도죄가 성립한다. 항거불능 상태에까지 이르지 않았더라도 결정적인 두려움에 못이겨 그처럼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언론사의 처분행위가 있었다면 적어도 공갈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80년 언론대학살’은 그 불법행위의 구체적 정황은 피해 언론사주들과 당시 관여했던 공직자들의 증언으로 의문의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후 5공 군사통치의 억압분위기가 좀 수그러지고 언론기본법이 폐지된 뒤에 신문들은 거의 복간될 수 있었음에 반해 방송은 아무런 복원조치도 이뤄지지 않은 채 15년이 흘렀다.

동아일보사는 부득이한 자구책으로 방송국을 되찾기 위해 대한민국과 한국방송공사(KB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그 심리과정에서 언론통폐합의 불법성이 생생하게 밝혀졌다. 특히 KBS로부터 받은 양도대금(41억6천만원)은 동아방송의 80년 당시 11개월 동안의 수익금보다도 적은 금액이어서 말이 양도양수이지 실제로는 거저 빼앗긴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군부집권자들이 그처럼 무모한 불법행위를 할 때의 핑계는 “종래의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으로 2원화되었던 방송구조를 공익우선의 공영방송체제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90년 들어 6공정권은 방송법을 날치기 처리하면서까지 공영방송구조를 억지로 공민영 혼합체제로 전환, 새 민방을 제 손으로 다시 허용하기로 했다.

방송공영제를 구실로 동아방송을 빼앗아간 이상 그 무선국을 다시 민영 상업방송으로 돌릴 때에는 원래의 권리자인 동아일보사에 환원시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민사상 원상회복의 의미로 보나 형사상 ‘피해자 환부’의 법리로 보나 재론의 여지가 없는 당위였다.

군사정권에 의한 과오를 바로잡는 일이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한다면 80년 언론대학살의 장물격이 된 동아방송의 원상회복은 필수적 과제이다.

〈최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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