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명배우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 촌스럽고 구질구질한 여자를 기품있는 숙녀로 만들기 위해 온갖 기발한 방법이 동원된다.
촛불을 연결한 관에 대고 글을 읽게 하는가 하면 진동기록계를 갖다놓고 발성 연습을 시킨다. 실로폰을 이용한 억양 고치기, 세련된 인사법과 자세 등을 가르치는 혹독한 훈련 끝에 시골뜨기는 왕실파티에서도 돋보이는 우아한 여인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한다.
「마이 페어 레이디」의 이미지 변신이 단지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이미지」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됐다.
정치인도 마찬가지지만 늘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연예인들에게 이미지는 실체보다 더 중요한, 「목숨」 만큼이나 귀한 것이다.요즘 뜨는 연예인 가운데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사람은 탤런트 김승우. 유순한 표정의 그가 7년전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90㎏의 거구로 「쌍칼」역을 맡았다는 것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20㎏ 이상의 살빼기와 철저한 자기관리로 「부드러운 남자」가 되는데 성공했다.
올해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서 「역대 최고의 히트상품」 제조자로 꼽힌 서태지도 이미지 메이킹의 귀재라 할 만하다. 노래에 맞는 복장 춤 등을 정밀하게 계산한 프로듀싱과 마케팅을 통해 음반판매에 별 영향력이 없던 10대를 대상으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냈다. 인기 정상에 올랐을 때 활동을 중단하는 것도 이미지 전략의 하나라는 분석.
연예인뿐 아니라 기업의 영업사원, 취업준비생 등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에 신경을 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지 메이킹」이란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스타가 아닌 이들도 스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이미지 메이킹이다.
영업사원들의 이미지 전략이 돋보이는 회사로는 푸르덴셜 생명보험이 꼽힌다. 여느 보험회사와 달리 「아줌마 부대」 대신 깔끔한 외모에 컴퓨터로 무장한 엘리트들인 「넥타이 부대」가 영업을 맡는다.
한여름에도 긴팔 와이셔츠에 정장차림인 이 「라이프 플래너」들은 역할연기를 하도록 한 뒤 이를 촬영한 비디오를 보며 단점을 분석하는 등 치밀한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다. 철저한 이미지 관리와 차별화 전략으로 푸르덴셜은 보험사원이 3백50명에 불과한데도 올해 보험감독원의 경영평가결과 최우수 보험업체로 뽑혔다.
10월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열린 「대학생을 위한 코디네이션 특강 및 패션쇼」는 신세대의 이미지 연출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반응이 시원찮을 것」이라는 우려를 깨고 19명의 「1일 모델」을 뽑을 때 70여명의 학생들이 지원했다. 지난달 13일 숭실대에서 열린 「취업면접시험 대비 메이크업 특강」도 남학생들까지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의 전문적인 이미지 컨설팅 분야는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미지 컨설턴트는 91년 이미지 메이킹을 국내에 처음 들여와 정치인과 기업인을 상대로 활동한 김은영 박사를 비롯해 김미현 한국홍보전략연구소장, 정연아 이미지연구소장, 선거참여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대통령도 바꿀 수 있다」를 쓴 차 영씨 정도. 그러나 외국체류중이거나 다른 일에 묶여 있어 이미지 컨설팅만 지속적으로 하는 사람은 드물다.
반면 미국의 경우 이미지 컨설팅 전문 회사가 2백개가 넘고 가르치는 내용도 복장 컨설팅, 스피치 컨설팅, TV출연매너, 에티켓 지도 등으로 세분화하는 추세. 경영대학원의 최고경영자 과정에서도 이미지 창출 및 관리를 위한 프리젠테이션 기법을 다룬다.
현재 미국 텍사스에서 이문화(異文化)간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하고 있는 김은영박사는 『영상매체의 발달, 정보전달 속도의 가속화와 함께 한국에서도 이미지 메이킹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져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쩌면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를 이미지. 그것이 당신의 본질에 앞서고 인생을 좌우하는 마력을 휘두를 날도 머지 않았다.
〈김희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