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ECH 글로벌 리더스] 〈한화〉 반도체 무대 오르는 한화… 초정밀 ‘하이브리드 본더’ 장비로 HBM 시장 존재감↑

  • 동아경제
  • 입력 2026년 5월 28일 17시 11분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인공지능(AI) 붐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반도체’입니다. 그중에서도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고대역폭메모리(HBM)는 AI 성능 고도화를 위한 필수 부품으로, 제조사들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았습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HBM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말 그대로 돈을 싸 들고 와 줄을 서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HBM 전성시대에 웃고 있는 건 반도체 제조사만이 아닙니다.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핵심 장비를 만드는 기업들 역시 낙수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시장 선점 경쟁도 치열합니다. 이 치열한 장비 시장에 한화그룹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한화세미텍 전경.
한화세미텍 전경.
선봉에 선 건 한화비전입니다. CCTV·영상보안 중심 기업에서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의 체질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HBM 제조 핵심 장비 시장에 후발주자로 진입한 한화비전이 기술력을 무기로 반도체 장비 시장의 확고한 ‘플레이어’로 안착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보안 업체에서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30년 초정밀 기술의 ‘진화’

한화비전은 1990년 처음 보안용 카메라를 출시한 이래 30년 넘게 영상 보안 사업을 이어온 글로벌 영상 보안 설루션 기업입니다. 지난해 매출 1조7909억 원, 영업이익 1623억 원을 기록했으며, 시큐리티 사업 매출의 88%가 해외에서 나올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화비전이 광학·보안 기업이라는 기존 이미지를 벗고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한화세미텍이 경기도 수원 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 국내 최대 표면실장기술(SMT) 전시회에 참가했다. 한화세미텍 제공
한화세미텍이 경기도 수원 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 국내 최대 표면실장기술(SMT) 전시회에 참가했다. 한화세미텍 제공
그 핵심에는 ‘한화세미텍’이 있습니다. 한화세미텍은 한화비전이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입니다. 처음부터 한화그룹 소속은 아니었습니다. 1977년 설립된 삼성정밀공업이 시초로, 삼성테크윈으로 사명을 변경한 뒤 방산·항공우주·CCTV·광학·정밀기계 등으로 사업을 넓혔습니다. 그러나 2014년 삼성테크윈이 한화그룹에 인수되면서 사명을 한화테크윈으로 변경했습니다. 이후 방산분야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CCTV 등은 한화비전으로, 정밀기계 분야 등은 한화정밀기계로 각각 분산됐습니다.

반도체와의 인연은 생각보다 오래됐습니다. 1989년 국내 최초로 표면실장(SMT) 칩마운터 사업을 시작했고, 1993년엔 반도체 후공정 장비인 와이어 본더를 처음 선보였습니다. 2024년 1월에는 한화모멘텀으로부터 반도체 전공정 사업을 인수하며 포트폴리오를 확장했고, 지난해 2월 사명을 ‘한화정밀기계’에서 ‘한화세미텍’으로 바꾸며 반도체 장비 전문기업으로의 새 출발을 알렸습니다.

SK하이닉스 퀄테스트 뚫었다… HBM 수율 잡는 ‘TC본더’

현재 한화세미텍의 성장을 이끄는 핵심 무기는 ‘TC본더’입니다. HBM은 D램을 수직으로 여러 장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칩이 미세하게 어긋나기만 해도 성능이 급감할 수 있어 정밀도가 곧 경쟁력입니다. 이때 칩과 칩 사이에 범프(전도성 돌기)를 넣고 열과 압력을 가해 눌러 붙이는 장비가 바로 TC본더입니다. HBM 수요가 늘수록 TC본더의 필요성도 함께 커지는 구조입니다.

한화세미텍 첨단 반도체 패키징 장비 개발 로드맵
한화세미텍 첨단 반도체 패키징 장비 개발 로드맵
후발주자로 시장에 뛰어든 한화세미텍은 빠르게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 TC본더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해 4년 만인 2024년 ‘SFM5 Expert’를 개발했습니다. 2025년 3월에는 SK하이닉스의 품질검증(퀄테스트)을 통과하며 제품 양산에 성공했습니다. 한화세미텍은 지난해 sk하이닉스로부터 약 805억 원 규모의 TC본더 장비 공급 계약을 수주하며 사실상 독점 체제였던 시장에 신규 공급사로 등장했습니다. 올해 초에도 약 97억 원 규모의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견고했던 기존 시장 구도에 유의미한 균열을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화세미텍은 기존 주력 사업인 SMT 칩마운터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초정밀 제어 기술이 TC본더 개발의 밑바탕이 됐다고 설명합니다. 회사 관계자는 “SMT와 반도체 후공정 장비는 유사한 부분이 있어 R&D 역량을 공유할 수 있고, 후공정 반도체 패키징 방식의 다변화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한화세미텍 TC본더 SFM5 Expert. 한화세미텍 제공
한화세미텍 TC본더 SFM5 Expert. 한화세미텍 제공
한화세미텍 관계자는 지난해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자사 TC본더의 차별화 요소를 직접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단위 시간당 생산량(UPH)을 높이기 위해 고가 부품을 적용하고, 열과 진동 제어를 위한 특수 복합소재를 도입했으며, 상용 소프트웨어 대신 자체 제어 모듈과 알고리즘을 개발해 장비와 소프트웨어 간 호환성을 높였다는 설명입니다.

차세대 HBM 장비 시장을 겨냥한 2세대 TC본더 개발도 한창입니다. 특히 올해는 본딩 헤드 크기를 키운 TC본더와 칩과 칩 사이 간격을 줄인 플럭스리스 TC본더 등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차세대 승부처 ‘하이브리드 본더’… 0.1μm 정밀도로 초격차 노린다

한화세미텍이 최근 가장 공을 들이는 영역은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시장의 핵심 기술로 손꼽히는 ‘하이브리드 본더’입니다. HBM은 D램을 높이 쌓을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수가 높아질수록 공정 난도 역시 상승하기 때문에 극도로 정밀한 결합 기술이 요구됩니다. 기존 TC본더는 지금까지 HBM 제조의 표준으로 자리 잡아왔지만, 20단 이상의 고적층칩 제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한화세미텍 2세대 하이브리드본더 ‘SHB2 Nano’. 한화세미텍 제공
한화세미텍 2세대 하이브리드본더 ‘SHB2 Nano’. 한화세미텍 제공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구원투수가 바로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입니다. 범프 없이 칩과 칩을 구리 패드 대 구리 패드로 직접 붙이는 방식으로, D램간 간격이 사실상 ‘0’에 수렴해 전체 두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데이터 전송 속도도 빨라지고 전력 효율도 높아져 향후 반도체 산업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죠. 글로벌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츠에 따르면 하이브리드 본더 시장 규모는 2033년 16억 달러(한화 약 2조4070억 원)까지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업계에서는 20단 이상 적층 구조를 채택할 HBM4E나 HBM5부터 이 기술이 본격 도입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화세미텍은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차세대 반도체 장비 개발 전담 조직인 ‘첨단 패키징장비 개발센터’를 신설하고 하이브리드 본딩 등 신기술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2022년 1세대 하이브리드 본더 ‘SHB1’을 개발해 고객사에 납품한 데 이어 지난 2월에는 2세대 하이브리드 본더인 ‘SHB2 나노’ 개발을 완료했습니다.

SHB2 나노는 위치 오차 범위를 0.1마이크로미터(μm) 단위로 제어합니다. 이는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약 1000분의 1 수준입니다. 이 미세한 간격이 반도체의 두께는 줄이면서도 성능은 높게 쌓아 올리는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의 핵심 경쟁력이 됩니다.

한화세미텍은 SHB2 나노를 올 상반기 중 고객사에 공급해 품질 테스트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테스트 결과가 나오는 데까진 통상 1년 정도 소요될 전망입니다. 회사 측은 향후 2~3년 내로 하이브리드 본더가 도입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화세미텍 ALD 장비 ‘I2FIT’. 한화세미텍 제공
한화세미텍 ALD 장비 ‘I2FIT’. 한화세미텍 제공
한화세미텍이 ‘종합 반도체 장비 제조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또 다른 축은 전공정 분야입니다. 한화세미텍은 2024년 ALD(원자층증착기)와 PECVD(플라즈마강화 화학기상증착기) 등 핵심 전공정 데모 장비를 고객사 반도체연구소에 공급해 품질 평가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공정 장비 시장은 후공정 장비 시장보다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통상 2년 이상의 데모 테스트 기간이 필요하고, 퀄테스트를 통과하더라도 추가 검증 과정을 거쳐야 양산 라인에 투입될 수 있습니다. 다만 퀄테스트를 통과한다면 전공정부터 후공정까지 모두 아우르는 종합 반도체 장비 제조 기업으로 도약할 전망입니다.

‘독립 선언’ 김동선, 반도체로 사업 확장… “초정밀 혁신 기술로 시장 공략”

한화세미텍의 올해 1분기 실적은 주춤했습니다. 매출 831억 원, 영업손실 137억 원을 기록하며 직전 분기보다 매출은 38.8% 감소했고, 영업이익도 적자로 전환했습니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를 HBM3E에서 HBM4로의 전환을 앞두고 고객사들이 신규 투자를 미루면서 장비 발주가 일시적으로 끊긴 영향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반기 HBM4 양산이 본격화되면 TC본더 발주가 다시 늘어나 실적이 개선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립니다.

증권가에서는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이 낸드와 파운드리 패키징에도 적용되면 2027년부터 본격적인 실적 턴어라운드가 나타날 것이란 장밋빛 전망도 나옵니다. 회사 측은 지속적인 신규 수주가 이어지고 있으며, 일정 기간 안정화 단계를 거치면 흑자 전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경영진의 의지도 확고합니다. 현재 한화비전을 포함해 한화모멘텀, 한화로보틱스 등 테크 계열사는 김승연 회장의 삼남 김동선 한화비전 미래비전총괄 부사장이 이끌고 있습니다.

김동선 한화비전 미래비전총괄 부사장이 세미콘코리아2025 한화세미텍 부스 곳곳을 돌며 기술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한화비전 제공
김동선 한화비전 미래비전총괄 부사장이 세미콘코리아2025 한화세미텍 부스 곳곳을 돌며 기술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한화비전 제공
김 부사장은 지난해 2월 한화세미텍 미래비전총괄로 합류하며 무보수 경영을 선언하고 R&D(연구개발) 투자 대폭 확대를 약속했습니다. 그는 “HBM TC본더 등 후공정 분야에선 후발주자에 속하지만 시장 경쟁력의 핵심은 오직 혁신 기술”이라며 “한화세미텍만의 독보적 기술을 앞세워 빠르게 시장을 넓혀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한화세미텍의 R&D 투자는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회사가 투입한 연구개발비는 2023년 507억 원, 2024년 678억 원, 2025년 795억 원으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모기업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화비전은 최근 한화세미텍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500억 원을 출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반도체 장비 사업 확대를 위한 전략적 투자라는 설명입니다.

오는 8월에는 한화그룹 인적 분할을 통해 테크·라이프 부문이 신설 지주사인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가칭) 아래 편입될 예정입니다. 한화비전·한화모멘텀·한화세미텍·한화로보틱스 등 테크 계열사와 한화갤러리아·한화호텔앤드리조트·아워홈 등 라이프 계열사가 신설법인으로 묶이는 구조입니다.

김 부사장은 지주사 경영에 집중하기 위해 지난 3월 ㈜한화 건설 부문 해외사업본부장직을 사임했습니다. 신설 지주사가 출범하면 김 부사장 주도로 투자·M&A 의사결정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이란 기대가 나옵니다. 한화세미텍을 앞세운 한화비전이 종합 반도체 장비사로 도약할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Q&A로 알아본 한화비전의 전략

Q. 하이브리드 본딩은 왜 아직 HBM에 적용되지 못하고 있나요?

하이브리드 본딩은 범프 없이 칩 표면의 구리 배선을 직접 맞붙이는 차세대 접합 기술입니다. TC본더 방식보다 칩 간 간격을 비약적으로 좁힐 수 있어 20단 이상의 고적층 HBM 제조에 필수적인 기술로 평가받습니다.

다만 상용화를 위해선 극복해야 할 난제가 많습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구리 배선끼리 직접 연결하기 때문에 수백 나노미터(nm) 이하의 미세한 정렬 오차만 발생해도 단선이나 보이드(공극) 발생으로 이어집니다.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대량 양산에서 비용 효율성이 없으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웨이퍼 전체를 붙이는 웨이퍼 투 웨이퍼(W2W) 방식이 유리하지만 웨이퍼 내 불량 칩이 있으면 멀쩡한 칩까지 버려야하는 치명적인 수율 문제가 발생합니다. 반면 칩을 하나씩 붙이는 다이 투 웨이퍼(D2W) 방식은 낮은 생산 속도가 걸림돌입니다. 결국 양산 라인에서 비용과 수율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시장 안착의 핵심 과제입니다.

Q. HBM의 단수(층수)가 높아질수록 공정이 까다로워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칩의 전체 두께 규격은 유지한 채 층수만 늘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국제 반도체 표준 규격에 따라 HBM의 표준 두께는 제한되고 있습니다. HBM3 및 이전 세대는 720㎛ 수준이었으며, 올 초 본격 양산에 돌입한 HBM4에서는 775㎛ 수준으로 높아졌습니다. 16~20단의 고적층 HBM을 양산하려면 D램을 더 얇게 만들어야 하는데 기술적 한계에 다다르면서 하이브리드 본딩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는 상황입니다.

최근 국제반도체표준협의회기구(JEDEC)가 높이 규격 완화를 논의 중이라 하이브리드 본딩 도입 시기가 다소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그러나 HBM이 고도화될수록 결국 하이브리드 본딩 도입이 불가피해질 것이란 게 업계의 시각입니다. 한화세미텍 측은 “규격 완화와 관계 없이 후공정 패키징의 다양한 기술 효율성을 고려할 때 향후 하이브리드 본더 활용은 필수적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Q. 한화세미텍은 종합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한화세미텍은 전공정과 후공정 장비 라인업을 모두 갖춘 국내 유일의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전공정에서는 증착 공정(ALD, PECVD) 장비를, 후공정에서는 플립칩 본더부터 TC본더, 하이브리드 본더에 이르는 패키징 장비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전·후공정 두 부문에서 양산 궤도에 안착하는 것이 종합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도약하는 확실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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