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수송보국’ 리더십…대한민국 항공산업 초석이 되다

  • 동아일보

한진그룹 창립 80주년 ①

한진그룹이 오는 11월 1일 창립 80주년을 맞는다. 한국 항공·물류 산업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 한진그룹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각 시대를 이끈 리더십과 기업의 변화를 짚어본다.

한진그룹의 조중훈 창업주는 일평생 ‘수송보국(輸送報國)’을 신념으로 삼아 수송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해방 직후 혼란하던 1945년 당시 스물다섯살이던 그는 트럭 한 대를 장만하고 인천시 해안동에 ‘한진상사’ 간판을 내걸었다. 교통과 수송은 인체의 혈관처럼 한 국가의 정치·경제·문화·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간 산업이다. 그래서 수송으로 우리나라 발전에 이바지하는 일이라고 그는 믿었다.

조중훈 창업주는 한진상사 창업 초창기부터 ‘신용’을 가장 중시했다. 민간 외교를 한다는 자세로 국가의 명예를 지키고 한진의 신용을 쌓아나갔다. 6·25 전쟁 직후 쑥대밭이 된 땅과 은행 부채만 남았을 때도 있었지만, 쌓아온 신용으로 2년 만에 전쟁 직전의 사세를 회복했다. 한진상사는 미 군수품 책임제 수송, 주월 미군 군수품 수송 등을 도맡으며 회사를 키워나갔다. 1956년도에는 7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미군과 직접 맺으며 수송 전문 회사로서 입지를 다졌다. 이 무렵 본사도 인천에서 서울로 옮겼다.

조중훈 창업주가 한진상사 창업 초창기 미군 관계자들과 찍은 사진. 한진그룹 제공
조중훈 창업주가 한진상사 창업 초창기 미군 관계자들과 찍은 사진. 한진그룹 제공

육상 수송 분야 사업이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자, 조중훈 창업주는 ‘하늘에서의 수송’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초기에는 부실한 상황이었던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망설였다. 하지만 “국적기는 하늘을 나는 영토 1번지이며 국적기가 날고 있는 곳에는 그 나라의 국력이 뻗치는 것 아니냐”는 박정희 대통령의 거듭된 요청에 항공공사 인수를 약속했다. 반대하는 회사 중역들에게는 “밑지면서도 계속 해야 하는 사업이 있는 것”이라며 국익과 공익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소명이라고 설득했다.

그는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부채 27억짜리 회사의 정상화에 나섰다. ‘기업이 곧 인간’이라는 소신으로 기존 항공공사 직원들을 모두 끌어안았고 당시에는 새로운 개념이었던 성과별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수시로 정비 현장을 찾아 현장 직원들의 고충을 편히 듣고 얼굴을 기억하기도 했다. 제트엔진에 관한 실무 서적부터 유체 역학, 재료학 원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항공 관련 서적을 탐독하며 실무진과 깊은 얘기를 나눴다.

인수 초기 제트기 1대 외에는 변변한 항공기도 없던 대한항공공사는 민영화 첫해 서울-오사카-타이베이-홍콩-사이공-방콕을 연결하는 동남아 최장 노선을 개설했다. 사이공 취항은 베트남전에 파병된 우리나라 군인과 기술자들을 국적기에 태워야 한다는 조중훈 창업주의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73년 5월 대한항공의 보잉 747 점보기 태평양 노선 취항 행사. 한진그룹 제공
1973년 5월 대한항공의 보잉 747 점보기 태평양 노선 취항 행사. 한진그룹 제공

1970년대 들어서는 미 태평양 노선과 유럽 항로를 개척하며 국제항공사로서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전 세계에 오일쇼크 위기가 닥쳤지만 ‘새로운 도전 없이는 발전도 없다’는 경영 전략으로 미래를 대비했다. 항공기 구매를 추진하는 한편, 대형 IBM 컴퓨터를 도입해 국제선 여객 예약 전산 시스템을 추진하는 등 서비스 개선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1973년 미주로 향하는 태평양노선에 보잉 747 점보기를 투입했고 이듬해 같은 기종을 추가 도입해 화물기로 투입했다. 전 세계 최초로 점보기를 화물 노선에 투입한 것이다. 오일쇼크 위기를 넘긴 대한항공은 1975년 매출액 1천억 원을 돌파하고 흑자를 기록했다.

조중훈 창업주는 항공 운송 사업에서 안전과 정시성을 가장 중시했다. 제주도에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조종사 양성 기관인 제주비행훈련원(정석비행장)을 세우고 고가의 모의 비행 훈련 장비 시뮬레이터를 도입해 조종사 훈련에 차질이 없도록 지원했다.

1996년 제주비행훈련원에서 직원들을 격려하는 조중훈 창업주. 한진그룹 제공
1996년 제주비행훈련원에서 직원들을 격려하는 조중훈 창업주. 한진그룹 제공

현재 대한항공 항공우주 사업의 기반이 된 항공기 제작 업무도 조중훈 창업주가 씨앗을 심었다. 당시 정부는 전투기 정비 경험이 있던 대한항공에 국산 전투기를 생산을 요청했다. 조중훈 창업주는 1976년 말 경남 김해 일대에 항공산업 시설을 갖춘 공장(현 테크센터)을 준공하고 1982년 우리나라 최초 국산 전투기 ‘제공호’를 출고했다. 이를 계기로 단순 정비만 하던 국내 항공 산업도 완제기를 조립 생산해 내는 면허생산 단계로 한 단계 도약했다. 또한 창공 1, 2호 등 초경량 항공기 개발을 거쳐 1991년 국내 최초의 실용 항공기로 등록된 창공 91호를 개발하는 의미 있는 발자국을 남겼다.

조중훈 창업주는 기업이 사회 복지 증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이 인재 양성이라며 교육 사업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에 1968년 인하학원, 1979년에는 한국항공대학교를 인수했고 학교 시설 확충과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88년에는 국내 최초 사내 산업대학인 한진산업대학(현 정석대학)을 설립해 직원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설립 첫 해 직원 5600여 명이 입학 경쟁을 벌일 정도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 같은 교육열은 현재까지 한진그룹의 교육 공헌 사업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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