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시프트, 영올드가 온다] 2부 〈5〉시니어주택 확산 막는 규제
토지-건물 직접 소유해야 사업 가능… 비싼 서울 도심보다 외곽 지역 설치
지역사회 융화 못한채 폐쇄 공간화… 정보 침해논란에 헬스케어도 부담
기업들 진출 막는 규제 적극 해제를
2022년 12월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부지에 조성될 예정이라며 ‘청사진’이 공개됐던 4만8000㎡ 규모의 시니어타운 ‘골드빌리지’는 결국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무산됐다. 현행법상 시니어 주거시설의 경우, 임대만 가능하고 분양은 금지돼 있어 사업 타당성이 떨어졌던 탓이었다. 결국 서울시는 이달 8일 해당 부지를 공매 물건으로 등록했다.
한국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지만, ‘영올드(Young Old·젊은 노인)’들이 제2의 삶을 도모할 주거 공간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과거의 노인들과 달리 더 건강하고 독립적인 영 올드들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주거 선택지가 제공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전향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4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국내 시니어 주택 수는 총 1만2962채로 집계됐다. 같은 시점의 65세 이상 인구(973만411명) 대비 0.13%에 불과하다. 미국(4.8%), 일본(2.0%)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서도 크게 적은 수준이다. 게다가 시니어 주택 중 69.5%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시니어들을 위한 실버타운, 30.5%는 저소득층을 위한 고령자 복지주택으로 양분돼 있다. 일본의 경우 도쿄 중심부에 매달 110만 원 정도만 내면 거주할 수 있는 실버타운 ‘코코판 가치도키’ 등이 존재하는 반면 우리 중산층 영올드에게는 마땅한 주거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뒤늦게 정부는 지난해 중산층 시니어에 특화된 민간 임대주택 ‘실버스테이’를 도입하기로 했다. 임대료는 시세의 95% 이하로 책정, 무주택자뿐 아니라 유주택자도 입주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첫 실버스테이 시범사업을 위한 사업자가 이달 17일에야 선정된 점을 고려하면 실버스테이가 정착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니어 주택이 활발히 건립되려면 자금 여력이 풍부한 금융회사, 대기업 등이 해당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지만 각종 규제들도 민간 기업의 진출을 가로막고 있다. 현행법상 30인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요양시설(요양원)을 설치하려면 토지, 건물을 직접 소유하거나 공공부지를 빌려야(임차) 한다. 기업들이 비싼 서울 도심보다 주로 외곽 지역에 시니어 주택을 지어 온 이유다.
이렇다 보니 한국의 시니어 주택은 지역 사회와 융화되지 못한 채 폐쇄적인 공간으로 남은 경우가 많다.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수도권 부지를 확보하기 쉽지 않고 토지 인수, 건물 착공 등에 최소 500억 원이 소요돼 외곽 지역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기업은 언제든 요양업을 철수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규제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로 인해 시니어 주택이 ‘외딴 섬’에 우후죽순 생기고 입주자의 소외를 심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송윤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도 “(이 같은) 소유 규제는 지역별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지역 사회에 계속 거주하려는 시니어의 욕구, 요양 사업 지속성 및 서비스 품질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헬스케어’ 등 시니어 주택과 시너지를 낼 만한 사업을 함께 운영하기 힘들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일본 최대 손해보험사 손보저팬보험은 자회사를 통해 450여 개 요양시설에 1만9000여 대의 수면 측정기를 설치, 입주자들의 수면, 호흡, 심박수 등의 데이터를 모아 소비자 특성을 분석하고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네덜란드의 사회주택 ‘리브인’은 시니어주택에 사는 거주인들에게 의료진을 집적 보내주며 ‘돌봄의 아마존 서비스’ 개념을 도입할 정도다.
반면 국내에서는 의료기기 활용 제한, 개인 의료정보 침해 논란 등으로 이 같은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원격 의료가 전면 도입되지 않은 데다 공공 의료데이터의 활용마저 제한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보험사 관계자는 “단순한 혈압 측정도 의료 행위로 분류돼 의사, 간호사가 아니면 할 수 없다 보니 (회사 차원에서) 의료진을 채용하기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노인시설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도 여전히 곱지 않다. 네덜란드 힐베르쉼시 리브인에는 미용실, 식당 등 편의시설이 많아 지역 주민들이 함께 이용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규제 완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우선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이 아닌 사용권만 확보해도 시니어 주택을 지을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인구 감소 지역(89곳)에 분양형 시니어 주택을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올 3월에는 보험사의 요양 관련 업무 범위를 확대하고 시니어푸드 제조·유통업무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과감한 대책이 없다면 시니어 주택의 ‘만성 부족’이 이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인구 감소 지역에서만 분양형 주택을 허용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기업이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 분양에 나서겠느냐”며 “시니어 주택 생태계조차 갖춰지지 않은 만큼 일단 수많은 기업이 진출할 수 있게 웬만한 규제들을 적극 풀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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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5 14:26:33
영올드, 시니어 레지던스, 실버스테이? 이렇게 영어를 쓰야만 하나? 처음 도입할 때 제대로 된 우리말로 해야지 이렇게 영어로 시작하면 결국 일상용어로 굳어져서 사용하게 된다. 뭔뜻인 한참 봐야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