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10분의1 동의땐 조합장 탄핵 절차 가능[박일규의 정비 이슈 분석]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7일 03시 00분


대통령제 닮은 ‘조합 방식’
조합장 1인에 기능과 권한 집중… 신속한 결정과 사업성 제고엔 도움
조합장 견제 위한 ‘탄핵 규정’ 있어… 특별한 사유 없어도 탄핵 가능
반대파 남용 시 사업 표류 부작용도

대다수 재건축, 재개발 현장은 조합방식으로 정비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도시정비법은 신탁사나 공공기관 등의 사업 참여를 규정해 시행 방식을 다각화하려 하지만 주류는 조합방식이다.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대표변호사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대표변호사
조합방식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조합장에게 권력이 집중된다는 점이다.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만 놓고 보자면 대통령중심제 정부 형태와 유사하다.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삼권분립제를 통해 권력 집중 현상을 견제한다. 하지만 조합방식 정비사업에서는 사실상 조합장 1인에게 모든 기능과 권한이 집중된다. 감사의 역할과 권한은 제한적이어서 유명무실한 경우가 많다. 조합의 의사 결정은 조합장이 실질적 내용을 마련하고 대의원회나 총회는 찬성 혹은 반대만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조합장 권력 독점 현상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장치는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조합장의 권력 독점이 반드시 불합리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조합은 사업시행자의 속성상 신속한 의사 결정과 사업성 극대화가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부흥 외에 국민 기본권, 법치주의, 민주주의 등 다양한 헌법적 가치의 구현이 중요한 국가 공동체와 달리 권력 독점을 통해 사업성 제고를 앞세운다고 해서 비난할 일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조합장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도시정비법 입법 과정에서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트로이 목마’처럼 강력한 규제 장치인 ‘조합장 해임’ 규정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도시정비법에서는 조합원 10분의 1의 동의만으로도 조합장을 탄핵 심판대에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합장 해임을 주도하는 사람은 총회 소집권까지 얻어 이사회, 대의원회 등 복잡한 절차도 필요하지 않다. 조합장의 해임은 총회의 권한이고 조합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조합원 과반수 찬성만으로 결정된다.

이는 대통령 탄핵 청구와 대조적이다. 대통령 탄핵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발의와 재적의원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또 대통령 탄핵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이고 헌법재판관 6인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결정적인 차이는 탄핵 사유에서 나온다. 대통령 탄핵에는 헌법 또는 법률 위반이라는 사유가 필요하지만, 조합장 해임에는 특별한 사유가 필요하지 않다. 직무 집행에 법령 위반이나 별다른 잘못이 없더라도 조합원 10분의 1의 동의로 총회를 소집해 조합원 과반수 출석, 출석 조합원 과반수 동의라는 절차만 준수하면 조합장을 탄핵할 수 있는 것이다.

조합장 해임을 둘러싼 소송에서 해임 사유 존재 여부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조합정관은 통상 ‘직무 유기, 태만, 법령 위반’ 등 해임 사유를 나열하고 있다. 하지만 주류적 판례는 절차를 준수한 조합원의 의사 결정만 있다면 조합장 해임에 특별한 사유가 필요치 않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도시정비법 규정 탓에 정비사업의 불안정성이 가중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재건축 조합원의 의결권은 철저히 1인 1표다. 수십 개의 물건을 소유한 사람이라도 조합원 1인에 불과하고 조합원 총회에서 고작 1개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다. 주식회사는 보유한 주식 수에 비례해 의결권을 가져 대주주 간 의사 결정이 가능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소수 반대파에서 너무 쉽게 조합장 해임을 발의해 사업을 장기간 표류 상태로 만든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재건축 조합이 비싼 돈을 들여 홍보 인력과 총회 전문 대행업체를 활용하거나 조합원에게 회의 참석비를 지급하는 것도 개개 조합원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경우가 많다.

조합장 권력을 견제하는 해임 규정의 가치를 쉽게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지금의 해임 규정이 사업 안정성과 권력의 견제라는 상반된 가치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는지는 점검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타당했던 규율이라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쪽 가치에 치우쳐 형평을 잃었다는 판단이 서면 입법적 개선을 미룰 이유가 없다.

#조합 방식#정비사업#도시정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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