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은 ‘열매를 준비하는 나무는 꽃을 남김없이 떨어뜨린다’고 했다. 핵심에 집중하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라는 의미다.
관세청은 그간 모든 입국자에게 부여됐던 ‘휴대품 신고서’ 작성 의무를 올해 7월부터 폐지한다. 앞으로는 세관 신고대상 물품이 없는 입국자는 신고서 작성 없이 입국할 수 있고, 신고물품이 있는 입국자만 모바일 또는 종이 세관신고서를 작성하면 된다.
현재와 같이 ‘모든 입국자’가 신고서를 작성하는 제도의 시작은 1971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고, 심지어 출국할 때도 신고서 작성이 필요했다.
이번에 제도를 변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도입 후 5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현행 제도가 대내외 환경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불편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입국자 100명 중 99명이 신고 물품이 없다고 하는 현실에서 세관이 왜 99명에게 신고서를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생긴다. 휴대품 신고제도의 주요 목적은 신고가 필요한 물품에 대한 대국민 안내와 성실신고 유도에 있다.
입국자가 구매한 면세물품이 800달러를 초과하거나 총포, 도검, 멸종위기 동식물 등 국내 반입이 금지 또는 제한된 물품을 들여오는 경우 세관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을 안내하고, 신고서 작성을 통해 성실신고를 심리적으로 유도하는 효과를 기대했다.
이 경우 몇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이와 같은 효과를 위해 ‘모든 입국자’에게 신고서 작성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신고물품이 없는 입국자에게도 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조세원칙에 부합하는지, 혹시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들도 모든 입국자에게 신고서 작성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지.
결론부터 얘기하면, 위 질문들에 명쾌하게 답하기 어렵다.
세관 신고 대상 물품을 안내하고, 성실신고를 유도하기 위한 안내문 배포 등 다양한 대체 수단이 있다. 조세제도 측면에서도 신고 대상 물품이 없는 사람은 신고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 근로소득만 있는 사람이 종합소득세 신고서를 작성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미국, EU 등 주요 국가들도 신고물품이 있는 경우에만 신고하도록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여행자 세관검사는 국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 자율을 존중하면서 마약, 총기류 등 불법물품 반입이나 탈세 시도는 철저하게 단속하는 방향으로 운영하고자 한다.
신고물품 자진 신고자에게 세액 감면을 확대하는 등 성실신고를 장려하는 한편으로 제대로 신고하지 않으면 법령에 따라 엄격히 제재할 예정이다. 또한 불법물품 반입에 대해서는 다양한 정·첩보, 최첨단 기술·장비 등을 통해 엄정하게 대응해 나갈 방침이다.
관세청은 앞으로도 출입국, 해외직구 등 국민과 밀접한 행정서비스 관련 기존 관행·규제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혁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국민 편의를 위해서는 ‘관행’이라는 ‘꽃’을 떨어뜨릴 줄 알아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