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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반도체-車 등 국가핵심기술, 해외유출 5년간 36건 적발

입력 2022-10-07 03:00업데이트 2022-10-07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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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분야 8건으로 가장 많아
‘국가핵심기술’ 법적 기준 모호해
中에 기밀 넘기고 무죄선고 받기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제조사의 개발부장 A 씨는 ‘실시간 습식 식각(화학약품으로 표면을 가공하는 작업) 장비 제어기술’을 2016년 중국 기업에 유출했다. 이 회사에서 함께 일한 중국인 B 씨가 중국 업체로 이직하며 A 씨에게 기술을 넘겨줄 것을 제안한 것. A 씨는 업무용 노트북에 저장된 해당 기술 관련 소스코드 584개를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에 몰래 담아 B 씨에게 전달했다. 이 기술은 중국 현지의 여러 OLED 업체에 전해진 것으로 파악됐다.

실시간 습식 식각 장비 제어기술은 디스플레이 두께가 설정된 목표에 이르면 자동으로 식각을 종료하는 국가핵심기술이다. A 씨는 지난해 1월 1심 재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지만, 올 1월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중국으로 유출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1, 2심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린 데 따른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개별 유출 기술들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적 기준이 모호하다”고 말했다.


6일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이 산업부와 국가정보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 8월까지 국가핵심기술 36건, 산업기술 109건이 해외로 유출됐거나 유출 전 적발됐다. 적발된 해외 유출 국가핵심기술 중에서는 반도체 분야가 8건으로 가장 많고 조선(7건) 디스플레이(6건) 전기전자(5건) 등의 순이었다. 특히 국가핵심기술 유출 건수는 2017년 3건에서 지난해 10건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전 세계가 경제안보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의 주요 기술이 해외로 새는 것이다.

국가핵심기술이란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기술로, 기술 수출이나 인수합병 시 정부 신고나 허가를 거쳐야 한다. 10월 현재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전자, 자동차 등 12개 분야에 걸쳐 73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다. 이에 비해 산업기술은 각 정부 부처가 지정하는 주요 기술로, 국가핵심기술에 비해 완화된 정부 통제가 적용된다. 지난해 말 기준 3942개가 산업기술로 지정돼 있다.

국가핵심기술 등의 해외 유출이 늘면서 정부 대응도 강화되고 있다. 산업부는 이달 중 기업들을 대상으로 산업기술 보호관리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자율주행 기술 빼돌려도 집유… ‘기술유출 판결’ 실형 10%뿐


1심 징역 선고→2심선 집행유예
“낮은 처벌에 계속 유출” 지적 나와
정부, 처벌 강화 등 법개정 나서
핵심기술 유출 양형기준 신설 추진



현대자동차 책임연구원 A 씨는 국가핵심기술 유출 혐의로 올 1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7월 2심에서 집행유예 3년으로 감경됐다. A 씨는 2020년 4월 미국의 자율주행 업체로 이직하기 위해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현대차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SCC)’ 기술을 빼돌렸다. SCC는 운전자가 설정한 속도와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첨단기술이다. 2심 재판부는 “유출된 기술이 개발된 시점으로부터 상당한 기간이 지났고 피해 회사(현대차)가 이보다 진보된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이유로 감형을 판결했다.


동아일보와 산업통상자원부가 2015년∼2022년 8월까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 판결문 52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기소된 피의자 111명 중 실형을 선고받은 인원은 11명(9.9%)에 불과했다. 집행유예 판결이 48명(43.2%)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무죄 판결 29명(26.1%), 벌금 15명(13.5%) 순이었다.

지난해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일반 형사사건의 실형 비율이 27.7%인 것과 비교하면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자에 대한 법원 판결이 상대적으로 관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한국의 핵심 기술들이 해외로 새게 되는 핵심 이유이기도 하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업기술 유출은 국가 안보 위협에 해당하는 사안으로 봐 좀 더 엄격하게 법 집행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핵심기술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의 패널 설계, 공정, 제조 기술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AMOLED 관련 기술 가짓수가 너무 많고, 새로운 기술이 지속적으로 나오다 보니 재판에서 국가핵심기술로 볼 수 있는지 애매해지는 경우가 많다. 국가핵심기술 유출은 산업기술 유출보다 더 강한 제재를 받는다.

양형 기준도 없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에는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 행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15억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규정돼 있을 뿐 대법원 양형 기준은 별도로 없다. 이 때문에 판사들은 영업비밀보호법을 준용해 1년∼3년 6개월 징역형을 양형 기준으로 삼고 있다.

산업부는 산업기술 유출 사각지대를 막기 위해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핵심기술 보유 업체들에 대한 등록제와 외국인의 국가핵심기술 보유 국내 기업에 대한 투자 제한 강화, 위반 시 처벌 강화 등이 골자다. 산업부는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 수를 170여 개로 추산하고 있다. 등록제에 참여한 기업에 수출 간소화 등의 인센티브를 주고, 참여하지 않는 기업에는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산업부는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행위에 대한 양형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협의하기로 했다. 국가핵심기술과 산업기술 유출 행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별도로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달 중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실무 논의를 거쳐 내년 4월 이후 새로 구성되는 양형위원회에서 핵심기술 유출 행위에 대한 양형 기준을 별도로 신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는 이와 함께 산업기술 보호를 위한 기업 실태조사를 이달 실시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기술 보호가 미흡한 업체에는 시정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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