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빠르게 퍼지는 조류인플루엔자… 사람도 감염 피할 수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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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개 주서 약 4000만 마리 감염
고병원성 바이러스 감염된 검은등갈매기가 원인으로 밝혀져
전문가들은 조류 행동 연구 강조
“바이러스 확산 대비하려면 관련 연구에 투자 아끼지 말아야”

오리를 잡아먹고 있는 검은등갈매기. 지난 겨울 유럽에서 캐나다 동부로 날아온 검은등갈매기는 미국에서 확산 중인 조류인플루엔자(AI)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오리를 잡아먹고 있는 검은등갈매기. 지난 겨울 유럽에서 캐나다 동부로 날아온 검은등갈매기는 미국에서 확산 중인 조류인플루엔자(AI)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미국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퍼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AI로 목숨을 잃은 야생조류만 100개 종 38만3000마리로 추정된다. 닭과 오리 등 가금류까지 합칠 경우 그 수는 늘어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사람과 포유류 감염까지 우려되면서 AI를 철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고병원성 AI 급격히 확산
23일 미국 농무부(USDA)의 AI 모니터링 시스템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는 텍사스, 조지아, 위스콘신, 미네소타, 아이오와 등 36개 주에서 AI 감염 사례가 확인됐다. 총 372개 조류 무리에서 AI 감염이 확인됐으며 약 4009만 마리가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AI는 닭·오리·철새 등 조류가 ‘H5N1’ 바이러스에 감염돼 발생하는 급성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공기를 통해 전파되고 호흡기로 감염되며 사람도 드물게 감염된다. 질병의 중증도에 따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와 저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LPAI)로 나뉘는데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HPAI다. 빠른 전파 속도로 조류에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HPAI는 1996년 중국의 거위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이후 전 세계의 숙주를 거치며 진화했다. 2005년 중국에서 대규모 발병을 일으켰고 2014년에는 북미에 처음 등장했다. 이제는 미국에서 수시로 발생하는 전염병이 됐고 국내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1∼3년을 주기로 발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03년 HPAI가 처음 발생한 이후 유행 때마다 수백만∼수천만 마리의 닭이 살처분되고 있다. 개발된 백신이나 치료제는 없다. HPAI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조류 살처분을 택하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살처분만으로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HPAI의 유행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어 방역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 인간까지 위협… AI 감시 체계 정비해야
이번에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AI는 지난겨울 유럽에서 캐나다 동부로 날아온 검은등갈매기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검은등갈매기가 고병원성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날개폭이 2.5m에 이르는 검은등갈매기는 하루 만에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다. 그만큼 바이러스가 쉽게 전파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점점 더 많은 종류의 조류가 감염에 노출되면서 확산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감염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유행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니콜라 힐 미국 매사추세츠대 생물학과 교수 연구팀은 “야생조류들이 고병원성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사례가 늘면서 확산세가 가팔라지고 있다”고 지난달 19일 국제학술지 ‘플로스 전염병’을 통해 밝혔다.

인간과 포유류의 감염 사례까지 늘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주 천연자원부는 지난달 31일 붉은 여우 개체군에서 HPAI 양성 반응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위스콘신 외에 미네소타와 아이오와, 미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도 감염된 여우가 확인됐다. 아마도 감염된 조류를 먹은 후 전염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토끼나 스컹크 같이 조류를 먹는 다른 종에서도 감염 사례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4월 28일에는 조류와 접촉한 후 HPAI에 감염된 사람의 사례가 미국에서 보고됐다. 이 사례를 포함해 2003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880건의 인간 감염 사례가 있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는 “HPAI에 감염된 조류의 타액이나 점액, 대변은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며 “사람 간 감염은 드물지만 충분한 양의 바이러스가 사람의 눈이나 코, 입에 들어가면 인간 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조류의 행동양식에 대한 연구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행동양식을 파악해 고병원성 바이러스 감염과 확산을 선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힐 교수는 “HPAI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확산을 막기 위해 야생조류의 행동양식을 연구하고 관련 감시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조류인플루엔자#감염#검은등갈매기#고병원성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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