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째 수술대 오른 부동산 공시제도…“현행 목표 현실화율 적절성 재검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일 12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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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 News1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 News1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부동산 공시제도가 또다시 수술대에 오른다. 국토교통부가 1일(어제) 공시가격 현실화 재검토를 위한 연구용역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부동산 공시제도의 토대가 되는 ‘부동산가격 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부동산공시법’)은 1989년 지가산정의 기준을 정하고, 토지·건물·동산 등의 적정한 가격 형성을 유도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후 현재까지 23차례에 걸쳐 크고 작은 법률 수정작업이 이뤄졌다.

또 부동산 공시가격 산정방식의 방향을 정하는 수술도 3차례나 진행됐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등 모두 좌파 정부에서 추진됐는데, 공시가격을 시세의 90% 수준까지 높인다는 목표 아래 공시가격 인상에 초점이 맞춰졌다.

반면 4번째가 될 이번 작업은 기존과는 상반된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국토부가 기존의 현실화율 목표가 과도하다며 전반적인 수정의 불가피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 공시가 올리기에 초점 맞춰졌던 3번의 수술


부동산공시법은 부동산 문제가 최대 이슈로 떠올랐던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4월 ‘지가공시 및 토지 등의 평가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됐고, 같은 해 7월부터 시행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시가격은 기준지가(공공보상 기준, 주무부처·건설부) 시가표준액(지방세 기준, 내무부) 기준시가(국세 기준, 국세청) 등으로 다원화된 지가체계를 일원화해 공신력을 높이고, 공적 지가체계의 효율적인 운영을 목적으로 도입됐다. 당시에도 1993년까지 토지 과세기준의 현실화가 목표였지만 지가가 급등하면서 목표 달성에는 실패하고 만다.

이후 지가는 안정세를 보였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친 뒤 1999년 하반기 이후부터 부동산시장이 불안해졌다. 이에 김대중 정부는 집권 3년차인 2000년에 공시지가 현실화 계획을 발표했다. 지가변동률을 웃도는 적극적인 공시지가 조정을 통해 시세반영률을 2005년까지 9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골자였다. 하지만 이때에도 현실화율의 기준이 되는 시세 산정에서 개발이익 등을 배제함으로써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

두 번째 수술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에 진행됐다. 집권 내내 규제 정책을 쏟아내며 부동산과의 전쟁을 치렀던 노무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등의 보유세 과세표준을 산정하기 위해 정부가 모든 건물과 부속 토지를 일체로 평가해 가격을 공시하는 ‘주택가격공시제도’를 도입했다.

이로 인해 공시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고 이는 현실화됐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경우 처음으로 산정된 2006년 16.20%를 보인데 이어 2007년에는 22.73%로 치솟은 것이다. 표준지도 2005년 26.25%, 2006년 17.81%, 2007년 12.40%로 두 자릿수 상승률을 이어갔다.

문재인 정부가 2020년 11월에 내놓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방안’ 역시 공시가 현실화율 제고에 초점이 맞춰졌다. 공동주택은 2025~2030년까지, 단독주택은 2027~2035년까지, 토지는 2038년까지 모두 현실화율을 90%로 끌어올리는 게 핵심이다.

적정가격보다 낮게 공시하는 관행이 지속되면서 평균 현실화율이 50~70% 수준에 불과한데다, 주택유형이나 주택금액별 현실화율이 제각각이어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 공시가 현실화율 90% 목표 포기 가능성

이처럼 과거 정부의 공시가 조정작업이 시세의 90% 수준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공시가 인상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윤석열 정부는 현실화율 목표를 낮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국토부가 1일(어제)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현행 현실화 계획은 목표 현실화율(90%) 수준이 높다”며 “적정가격의 개념과 해외사례 등을 고려하여 현행 목표 현실화율의 적절성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등 일부 선진국은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금액을 시세의 80~90% 수준에서 책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실화율 목표가 90%에서 80% 수준으로 낮춰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토부는 또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현실화율 목표 달성기간(5~15년)도 개별 부동산 간의균형과 국민 부담 수준 등을 감안해 재검토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경제 위기나 부동산 가격 급등과 같은 외부 충격이 있을 때에는 계획 적용을 일시적으로 유예하는 ‘탄력적 조정장치’도 신설할 방침이다.

이는 필요에 따라서는 현실화율 제고를 위한 공시가 인상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인상요인이 줄어드는 만큼 공시가격 상승률을 떨어뜨리는 장치로 활용될 수도 있다.

국토부는 올해 11월까지는 현실화율 목표와 달성기간 등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올해 12월에 발표할 2023년 표준지 및 표준주택 공시가격에 새로운 기준을 반영하기 위한 조치이다.

또 내년 상반기까지 공시가격 산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지방차지단체의 참여도를 높이고, 정보공개 대상과 범위, 양식 등을 바꾸는 내용을 포함한 종합적인 개선방안을 만들기로 했다.

국토부 이량 부동산평가과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작업을 통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고, 공시제도가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밝혔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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