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 발레파킹 130만원짜리 백화점 ‘VIP 주차권’ 중고마켓서 거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20일 14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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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기도에서 서울 송파구청 근처로 직장을 옮기게 된 직장인 A 씨는 사무실 근처 주차장을 알아보다 멘붕에 빠졌다. 회사 기계식 주차장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입고가 안돼 근처 공영주차장을 수소문해봤지만 매달 선착순 마감에, 이용료(월 25만원)도 예상을 훌쩍 넘었다. 주차권 거래 커뮤니티에 사연을 올리자 인근 백화점 연간 주차권을 70만 원(월 6만 원)에 판다는 쪽지를 받았다.

#주부 B 씨는 지난해 자녀 혼수를 치르며 받은 백화점 발레파킹(주차대행) 이용권을 요긴하게 썼다. 1층에 전용 주차구역이 있어 지하로 내려갈 필요도, 차가 긁힐 염려도 없었다. 시내에 갈 때마다 ‘주차장 있는 카페’를 찾는 수고도 줄었다. 올해 혜택이 끝나자 온라인 중고마켓에서 같은 이용권을 판매(양도)한다는 글을 검색해 바로 구입했다.


백화점 연간 수천만원 이상을 구입하는 ‘VIP 고객’들에게만 주어지는 발레파킹 주차권이 온라인상에서 불법 거래되고 있다. 스티커만 붙이면 전국 점포에서 사실상 무제한 주차를 할수 있는 혜택이 입소문을 타면서 이를 얻기 위해 매물이 많은 지역으로 구매 원정을 가거나 전국구 등기 거래도 빈번하다. 과거 아는 사람끼리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음성 거래가 온라인 중고거래 대중화로 더 확산가도에 올랐다.

20일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각 백화점별 VIP 주차권 거래가 수십건씩 진행 중이다. 서울 강남구, 용산구, 마포구 등 지역에서 ‘백화점 주차권’으로 검색한 결과 이달 3주간 거래 게시글만 200건 이상 올라왔다. 연초 매물이 갑자기 쏟아진 건 백화점들이 지난해 연간 구매 실적을 계산해 VIP 회원 등급을 다시 책정하기 때문이다. 안내를 받은 회원들은 1월 주차 등록을 거쳐 2월부터 사용할 수 있다.

백화점 정책상 타인 양도는 금지되지만 주차권 판매자들은 “백화점 줄이 길어도 대기가 없고 등급이 높으면 출차도 빠르다” “도심 출퇴근 주차권 개념으로 유용하다”며 불법거래 홍보 글을 버젓이 올렸다. 아예 ‘펑 방지금(거래불발시 돌려주지 않는 일종의 계약금)’으로 10만원을 요구하거나 주차권 외에 라운지 이용권까지 함께 등록해주겠다는 글도 있었다.

VIP 등급이 높을수록 호가도 뛴다. 신세계백화점이 구매 실적 상위 999명에게만 주는 최상위 등급 ‘트리니티’ 주차권의 경우 2주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 90만 원에 거래됐다. 바로 아랫단계인 ‘다이아몬드’ ‘플래티넘’ 주차권은 60만 원선, 그 다음인 ‘골드’는 30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상위 3등급 모두 전점 발레파킹이 가능하지만, 무료 주차는 트리니티 종일, 다이아몬드·플래티넘이 각 5시간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골드는 선택한 1개 점포에서만 무료 3시간 주차가 가능하다.

현대백화점의 최상위 등급인 ‘쟈스민 블랙’은 현재 호가가 최소 100만 원에서 많게는 130만 원까지 형성돼 있다. 현대백화점 VIP권은 서울 압구정, 무역센터, 여의도, 신촌, 목동, 경기 판교 등 주요 포스트에 골고루 매장이 분포돼있어 인기가 높다. 주력 점포가 각각 명동·강남, 소공동·잠실에 치우친 신세계와 롯데의 경우 최고등급인 트리니티와 에비뉴엘 주차권이 각각 70~90만 원 선에 판매되고 있다. 지난해 전체 매출 기준 순위(롯데 신세계 현대)와는 차이가 있다.

거액을 들여야 얻는 특전이 계속 시장에 풀리는 이유는 관리구조상의 ‘틈’ 때문이다. 롯데는 최상위 등급 3장, 2·3등급은 2장, 나머지는 1장씩 주차권을 발급하고 있다. 현대는 최상위 등급에만 2장 준다. 본인 차량 외에 한대 이상 더 등록할 수 있는 것이다. 고객 한 사람이 여러 백화점의 주차권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일부 VVIP 고객들은 특정 백화점 마일리지에 연연하지 않고 브랜드에 따라 움직여서 동시에 여러 백화점에서 우수고객 특전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당근마켓에는 같은 판매자가 서로 다른 백화점 주차권을 동시에 파는 사례도 제법 많았다.

백화점 업체들은 온라인 모니터링과 동시에 판매자에게 댓글이나 쪽지로 ‘우수고객 주차권을 양도하면 회원 자격이 박탈된다’고 경고 안내를 하는 등 관리를 강화하고 있지만 불법거래를 원천 차단하기엔 역부족이다. 백화점 관계자는 “온라인 거래 대부분이 익명이라 당사자 특정이 어렵고, 차량 등록 절차나 현장 검수를 엄격하게 하면 진성 고객들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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