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어망 재활용해 명품 브랜드에 공급… 해외서 러브콜 ‘K텍스타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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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닉 코튼 등 발빠른 트렌드 대응… 현지에 디자인스튜디오 설립하기도
고가 브랜드와 공동으로 제품 개발… 나이키 등에 에코 가죽 공급도

독일 프리드리히스하펜 아웃도어쇼 전시장 내 코리아실크로드 부스에서 곽노명 코리아실크로드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인 살레와의 바이어와 상담하고 있다. 한국섬유수출입협회 제공
독일 프리드리히스하펜 아웃도어쇼 전시장 내 코리아실크로드 부스에서 곽노명 코리아실크로드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인 살레와의 바이어와 상담하고 있다. 한국섬유수출입협회 제공
경북 영주에 자카드(패턴이나 무늬가 있는 직물) 제직공장을 운영하는 태평직물은 회사 매출의 98%를 미주와 유럽에서 벌어들인다. 이 회사의 원단은 프라다와 마이클 코어스, 룰루레몬, 토리버치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가방과 의류에 사용되고 있다.

까다롭기로 이름난 명품 브랜드에 직물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은 태평직물이 리사이클 나일론과 오가닉 코튼, 생분해 친환경 가공 등 글로벌 패션 추세에 발 빠르게 맞춰 바이어들의 관심을 모았기 때문이다. 김자장 태평직물 대표는 “해마다 계절별로 다양하고 새로운 기법의 신제품을 선보인 것이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들을 만족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의 섬유산업은 1987년 단일 업종으로는 처음으로 100억 달러 수출 실적을 올렸다. 수출산업이 다변화되면서 섬유업은 뒷전으로 밀린 사양산업이라는 말도 나오지만 프리미엄 소재로 제품을 차별화한 중소기업들엔 딴 나라 얘기다. 오랫동안 축적된 제조 기술에 한국인의 창의성을 더해 제품 차별화에 성공한 작지만 강한 기업들의 성공 스토리가 잇따라 들려오고 있다.

프리미엄 기능성 원단과 친환경 소재 원단을 수출하는 코리아실크로드는 투습방수와 발열, 초경량 및 친환경 소재를 중심으로 글로벌 하이엔드 브랜드인 휴고보스, 아르마니, 마이클 코어스 등을 주요 바이어로 갖고 있다. 대구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2001년부터 이탈리아 현지인을 채용해 이탈리아 지사와 디자인스튜디오를 만들고 대구 생산본부와 패션섬유소재 기술연구소도 설립했다.

2011년 미국에서 가장 큰 의류패션 전시회인 라스베이거스 매직쇼에 참가했을 때 일화다. 이 회사 곽노명 대표는 “부스를 옮겨 다니며 꼼꼼하게 품질을 체크하고 있던 아메리칸어패럴 디자인팀에 코리아실크로드 제품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유럽의 패션 트렌드를 소상하게 브리핑하자 즉석에서 10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아메리칸어패럴과 거래한 금액은 100만 달러를 넘는다.

이 회사는 내년엔 바다와 해안가에 버려진 폐어망을 수거해 재활용한 나일론 원단 생산을 눈앞에 두고 있다. 명품 프라다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는 이탈리아산 폐어망 재활용 나일론 원단을 대체할 K텍스타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아웃웨어용 패션 소재에서 산업용 섬유까지 폭넓은 아이템을 취급하는 베코인터내쇼날은 1993년 설립된 우리나라 1세대 프리미엄 텍스타일 수출 기업이다. 유럽 시장에서 한국 원단은 저가라는 편견의 벽을 깨고 야드(약 90cm)당 10달러를 넘는 고가 원단도 한국에서 수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탈리아 명품 의류인 스톤아일랜드를 비롯해 아르마니, 에르메네질도 제냐, 폴스미스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 고급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 정병일 대표는 2006년 5월 이탈리아 스톤아일랜드 본사에서 가진 바이어와의 첫 미팅에서 받은 “코리아가 어디냐”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제 곧 점심시간이니까 앉을 필요는 없고 거기에 서서 설명해 보라”는 얘기는 퉁명스럽기 그지없었다. 정 대표의 열띤 브리핑은 주어진 5분을 훌쩍 넘겼고, 바이어들은 베코의 원단을 수없이 만져 보면서 쥐었다 폈다 하기를 반복했다. 원단의 촉감을 천천히 느끼면서 정 대표와의 대화는 점심을 거른 채 이어지며 무려 3시간이 넘어서야 미팅을 마쳤다.

“갖고 오신 원단은 저희에게 주고 가세요.” 미터당 1달러짜리 싸구려 원단을 팔러 왔을 거라는 스톤아일랜드 측의 편견을 정 대표가 3시간 동안 무너뜨린 것이다.

최근 패션 시장의 화제로 떠오른 비건 소재 인조가죽 원단을 세계 시장에 공급하는 디케이앤디는 글로벌 합성피혁 전문 기업이다. 이 회사 최민식 대표는 직원 10명을 두고 유통업을 하다가 사옥을 처분한 돈으로 경기 안산의 합성피혁 공장을 인수한 데 이어 법정관리 대상인 베트남 공장도 인수해 국내외 생산 인프라를 확보했다. 이와 함께 부설 연구소를 설립해 기능성 제품뿐 아니라 친환경 제품 개발을 위해 천연피혁을 넘어서는 친환경 합성피혁 제품 연구에 몰두했다. 이런 노력으로 유럽섬유환경인증인 OEKO-TEX 1등급을 땄고, 리사이클 소재를 접목한 프리미엄 에코 가죽을 선보였다. 일본을 뛰어넘는 제품력을 인정받아 막스마라, 월포드, 나이키, 에르노, SMCP그룹 등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최 대표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30% 이상 매출이 올랐다”고 말했다.

이처럼 강소 섬유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것은 명품 바이어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혁신적인 노력에 따른 것이다. 여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섬유패션 활성화 기반 마련을 위해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을 통해 매년 100개 이상의 섬유회사를 지원하고 있다. 국내 80여 개 프리미엄 패션 소재 기업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리미에르비지옹 전시회 참가 자격을 갖고 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k텍스타일#폐어망#직물#오가닉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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