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직접 살테니 집 비워라” vs 세입자 “위로금 달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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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 3법 후폭풍 1년]〈중〉法때문에 敵된 임대-임차인
집주인-세입자 다툼, 1년만에 10배로


지난해 경기도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산 김모 씨(51)는 연말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세입자와 갈등을 겪고 있다. 세입자가 처음에는 원래 이사할 계획이었다고 했다가 돌연 위로금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세입자도 위로금 없이는 급등한 전셋값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댄다.

동아일보가 14일 대한법률구조공단 산하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의 상담 및 조정 현황을 분석한 결과 ‘임대차 3법’ 관련 상담 건수는 올 상반기(1∼6월) 7636건으로 지난해 상반기(2585건)의 3배로 증가했다. 분쟁 조정 신청 건수는 같은 기간 16건에서 167건으로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해 7월 말 임대차 3법이 도입되면서 임대차 시장에서 집주인과 세입자 간 다툼이 법적 공방으로 비화하는 등 전례 없는 갈등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세입자의 계약 갱신을 거절하거나, 임대료를 법적 상한보다 더 받으려고 “직접 거주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집주인이 많아졌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10월 위로금을 주고 세입자를 내보낸 뒤 위로금을 요구하는 세입자도 크게 늘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기존 임대차 시장의 질서가 어그러지며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힘들어졌다”며 “사회적 갈등에 따른 비용이 크게 늘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집주인 “직접 살테니 집 비워라” vs 세입자 “나갈테니 위로금 달라”
집주인, 5% 상한 넘는 인상 요구… 임대료 대신 관리비 올리기도
위로금 관행화, 세입자가 먼저 요구… 금액 놓고 집주인과 눈치싸움
임대차 갈등해소 방안 사실상 없어, 조정위 중재 불복해 소송가기도
“모두 고통… 점점 심해질 것” 우려

맞벌이 부부 이모 씨(32)는 2년 전 결혼 당시 반전세로 구한 서울 강남구 아파트를 이달 중순 비워줘야 한다. 계약 갱신을 요구했지만 집주인은 현재 80만 원인 월세를 법적 상한(기존 임대료의 5%)보다 많은 90만 원으로 올려 달라고 했다. 법 위반이라고 따지자 지방에 이사 갈 계획이라던 집주인이 돌연 “법대로 하겠다”며 “직접 거주할 테니 이사해 달라”고 했다. 감정이 크게 상한 이 씨는 서울 외곽에 반전세를 구했다. 그는 “기존 30분이던 출퇴근 시간이 1시간 반으로 늘었다”며 씁쓸해했다.

○ 임대차법 이후 집주인과 세입자 갈등 커져

지난해 7월 말 시행된 ‘임대차 3법’ 때문에 집주인과 세입자의 관계가 적대적으로 바뀌고 있다. 종전 집주인과 세입자는 서로 필요한 존재였다. 상대방 사정을 배려해 계약 기간보다 먼저 집을 비워주거나 시세보다 싸게 전세를 주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요즘은 이런 ‘좋은 세입자’나 ‘좋은 집주인’을 찾기 어렵다고 일선 중개업소들은 전한다. 임대차 3법으로 심해진 전세난으로 집 구하기가 어려워진 세입자들은 법적 권리를 최대한 누리려 하는 반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생긴 집주인들은 기존 세입자를 어떻게든 내보내거나 임대료를 최대한 올려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갈등이 심해지다 보니 각종 편법과 꼼수를 쓰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현행법상 집주인 본인이나 배우자, 자녀가 직접 거주한다면 세입자의 계약 갱신 요구를 거부할 수 있다. 일부 집주인들은 이런 규정을 세입자를 내쫓거나 임대료를 법적 상한보다 더 받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이런 경우 세입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서울 은평구 아파트에 전세로 살던 정모 씨(38)는 지난해 말 계약 갱신을 포기했다. 집주인이 계약을 2년 연장하려면 기존 전세 보증금 3억8000만 원에 추가로 월세 30만 원을 내라고 요구하면서다. 월세 전환은 세입자 동의가 필수적이다. 정 씨가 요구를 거절하자 집주인은 “아들이 직접 들어와 살게 하겠다”며 그를 내보냈다. 아무래도 거짓말 같아 집주인 아들이 실제 거주하는지 확인하려고 동네 주민센터를 찾아갔지만 열람 가능한 정보는 확정일자 기록뿐이었다. 그는 “억울하지만 소송은 시간과 비용 부담이 커서 포기했다”며 “‘들어와 살겠다’는 집주인 한마디면 세입자는 쫓겨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겠다고 허위로 얘기한 뒤 2년 안에 다른 세입자를 들이면 불법이다. 기존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현장에선 실효성이 없다는 불만이 크다. 확정일자 기록만으로는 다른 세입자를 들인 사실을 확인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보증금이 적은 월세이거나 전세대출이 없다면 굳이 확정일자를 받지 않아도 된다. 집주인이 보증금 없는 월세로 다른 세입자를 받거나, 집주인이 직접 전입신고만 하고 집을 비워두면 손해배상을 피할 수 있는 셈이다.

○ 상대방 거부하면 중재도 무용지물

임대료를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는 대신에 관리비를 올리는 사례도 등장했다. 법 도입 전부터 우려했던 ‘풍선효과’가 현실화한 셈이다. 서울 강동구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한 신축 빌라 주인은 세입자와 재계약을 하며 기존 5만 원 수준이던 관리비를 15만 원으로 높였다”며 “전세 매물이 워낙 귀하다 보니 집주인이 배짱을 부려도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줄을 선다”고 귀띔했다.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서 집주인들은 법을 피해 세입자를 내보내는 방법을 공유하고, 세입자들 사이에선 ‘위로금을 못 받고 집을 비워주면 바보’라는 말까지 돈다. 일례로 집을 전세로 놓고 있던 김모 씨는 연말 계약 종료를 앞두고 세입자에게 이사비를 지원해줄 마음이 있었지만 세입자가 생각보다 큰 금액의 위로금을 요구해 난감해하고 있다. 그는 “위로금 액수를 두고 세입자와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갈등을 해소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중재 기구인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의뢰해도 상대방 동의가 필수다. 조정 자체가 강제력이 없어 조정 결과에 불복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소송까지 가기도 한다.

엄정숙 법도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임대차 3법 도입 후 주택 명도 소송이 크게 늘었다”며 “상가와 달리 주택 임대차를 둘러싼 소송에서 이겨도 소송비와 시간을 따지면 손해일 수도 있지만 감정싸움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소송까지 불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세입자 보호라는 선의만 앞세운 졸속 입법이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를 적대적으로 몰고 갔다고 지적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그간 한국처럼 모든 주택에 예외 없이 규제를 적용한 사례는 없었다”며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고통을 겪는 임대차 3법의 부작용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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