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민심, 뿔난 여권, 등 돌린 동지…위기의 변창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6일 11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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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5일 LH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정부합동조사단의 전수조사를 위한 개인정보제공 동의서를 작성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5일 LH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정부합동조사단의 전수조사를 위한 개인정보제공 동의서를 작성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제공

취임한 지 2개월 남짓 지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큰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제기로 시작된 파문이 갈수록 확대되면서 변 장관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어서다. LH 직원들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으로 책임의식 부재라는 여당 고위층의 질타를 받아 리더십에도 큰 상처가 났다. 국민감정을 읽어가며 정책을 펼쳐야 할 국토부 장관으로서의 자질 논란도 다시 불거지고 있다. 학자시절 동지로 활동했던 시민단체들의 잇따른 공격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 갈수록 거세지는 책임론


변 장관에 대한 책임론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여야를 가리지 않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이번 투기 의혹 행위들이 벌어진 시점이 변 장관이 LH 사장으로 재직했던 기간과 일치한다는 점을 들어 ‘변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관직 사퇴 등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5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변 장관 책임론에 대한 질문에 “LH 사장 재직 시절, 도의적 책임뿐 아니라 실제적 책임이 있다면 응당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야당인 국민의힘 국토위 소속 의원들은 5일 정부와 여당에 △변창흠 장관 사퇴 △조건 없는 상임위 개최와 긴급 현안 질의를 통해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 실시 △3기 신도시 등 대형 국책사업 예정지의 토지 소유자에 대한 공직자 투기 의혹 국정조사 실시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토위 야당 간사인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이와 관련해 “변 장관은 LH 사장 재임시절 발생한 본 사건으로부터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며 “더 이상 주무장관으로서 각종 개발 정책 지휘해선 안 되므로 즉각 사퇴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 상처 난 리더십

이런 와중에 변 장관이 LH 직원들의 투기 행위를 옹호한 듯한 발언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됐다.

정부가 투기 의혹에 대한 전수조사 계획을 발표한 4일 MBC는 변 장관이 “개발 정보를 알고 땅을 미리 산 건 아닌 것 같다”라거나 “전면 수용되는 신도시에 땅을 사는 것은 바보짓이다. 수용은 감정가로 매입하니 메리트가 없다”라며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한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이튿날인 5일 이른 아침 변 장관을 국회로 소환해 강하게 질타했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들에게 “‘앞으로도 그 조직을 두둔하는 듯한 언동은 절대 되지 않는다’, ‘국민의 분노와 실망은 훨씬 더 감수성 있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발언에 따른 후폭풍이 줄어들지 않자 민주당은 6일 강선우 대변인의 서면논평을 통해 변 장관의 발언을 질타했다. 논평에서 “LH공사는 주택공급 정책의 당사자로서 스스로 더 경계했어야 할 신도시 투기 의혹으로 국민 여러분께 배신감을 안겼다. 게다가 안일한 인식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일부 발언으로 국민께 더 큰 상처를 또다시 주었다”고 지적한 것이다. 강 대변인은 이어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이 이같은 ‘집단 이기주의적 행태’보다 우선이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당으로부터 ‘책임의식 부재’와 ‘이기주의적 행태’라는 질타와 경고를 공개적으로 잇따라 받은 셈이다. 정부 부동산 정책을 책임지고, 범정부적인 투기 의혹 전수조사를 이끌어야 하는 변 장관이 리더십에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구설로 인한 자질 논란


변 장관이 오해를 살 만한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SH(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구의역 스크린사고 사망사고에 대해 쏟아낸 발언이 문제가 돼 야당은 물론 대통령으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했다.

당시 변 사장은 “하나하나 놓고 보면 서울시 산하 서울메트로로부터 위탁받은 업체 직원이 실수로 죽은 것”이라며 “사실 아무 것도 아닌데 걔(희생자)가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화근이 돼 야당인 국민의힘은 장관청문회 과정에서 맹공격했고, 장관 지명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정의당도 가세해 장관으로서 부적격이라며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마저도 임명장 수여식에서 “(사고로 숨진) 김군에 대한 발언은 안전-인권 문제라든지 비정규직 젊은이가 꿈을 잃게 된 점 등을 감안하면 충분히 비판받을 만했다”며 말했다.

이후 변 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사려 깊지 못했던 발언으로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점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의 질책을 무거운 심정으로 받아들이며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대한 옹호성 발언으로, 국민감정을 읽어가며 정책을 조율해야 하는 국토부 장관으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초래하게 됐다.

● 칼날 세운 어제의 동지

이번 LH 땅 투기 의혹을 제기했던 민변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추가 투기 의혹을 폭로하겠다고 예고한 것도 변 장관에게는 부담이다. 정부는 속도전을 통해 LH 땅 투기 의혹으로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시민단체에서 새로운 의혹을 제기할 경우 정부 조사 전반에 대한 신뢰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투기 의혹을 제기한 곳이 민변과 참여연대라는 점도 변 장관에게는 껄끄럽다. 변 장관은 학자시절 좌파 진영의 부동산 전문가로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과 함께 현 정부와 서울시 등의 각종 부동산 정책 밑그림을 그렸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지역 대학의 한 부동산학과 교수는 “변 장관과 참여연대 인사들은 많지 않은 국내 좌파 진영의 부동산 전문가 그룹에서도 핵심 멤버들”이라며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작업을 많이 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런데 2일 투기의혹 발표장에서 변 장관과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이들이 마이크를 잡고 나타났다. 이들은 또 투기 의혹 발표 직후 “국토부와 LH 차원에서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원인과 전말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관리 감독에 대한 감사원 감사의 칼날은 당시 LH 사장으로 재직했던 변 장관에게 겨눠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부동산 학계에서는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됐다”거나 “변 장관이 어제의 동지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는 얘기마저 흘러나온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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