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조원에서 314조원으로”…이건희, ‘초일류’ 삼성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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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10월 25일 11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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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타계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87년 회장 취임 후 대한민국 최대 기업이던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회장은 45세라는 젊은 나이에 회장 자리에 오른 탓에 우려도 적지 않았지만, 이듬해인 1988년 ‘제2 창업’을 선언하면서 지금의 삼성의 발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부회장 시절이던 1983년 자신의 사재를 털어 시작한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1993년 세계 1위에 올려놓으면서, 지금의 반도체 강국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 회장은 과거 위기 상황마다 충격 요법을 통해 조직에 긴장감을 더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 회장은 생산라인에서 불량이 난 세탁기 뚜껑을 손으로 깎아 맞추는 모습을 보고 대노했다. 이때 이 회장이 한 발언이 그 유명한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이었다.

고인은 이 당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해 8개 도시를 돌며 임직원 1800명과 350여시간 동안 토론을 벌였다. 몇 시간 동안 목소리를 높여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 내기도 했다. 이후 삼성은 출퇴근 시간을 앞당기는 7.4제를 비롯해 품질 경영을 이루는 모습을 보였다.

1996년에는 한계 사업을 정리하고 차세대 사업을 육성하는 ‘비상경영’을 진행했다. 이 회장의 ‘비상경영’은 한국이 IMF 외환위기로 휘청거릴 때,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던 원인으로 꼽힌다. 결국 삼성은 2000년 전 계열사 흑자를 기록하며 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다.

삼성전자가 지금의 스마트폰 기업으로 성장한 바탕에도 이 회장이 있었다. 1995년 임직원 20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품질은 나의 인격이오’라는 문구를 내걸고 불량 휴대폰 10만대 이상을 동시에 불태운 ‘애니콜 화형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날 이후 삼성은 휴대폰 품질 개선과 신기술 개발을 앞세웠다. 이른바 ‘이건희 애니콜’이 나왔을 정도였다. 삼성전자는 그 이후 2010년대 빠르게 스마트폰 시장에 진입, 현재까지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위기도 있었다. 이 회장은 2008년 특검팀 조사 과정에서 배임과 조세포탈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는 과정에서 회장직을 내놓았다. 그 이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등을 위해 사면되면서 2년 만에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했다.

이 회장은 회장으로 복귀하면서 미등기 임원을 자처했고 연봉도 받지 않기로 했다. 반면, 조직에 긴장감을 주고 스마트폰에 집중하도록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스마트폰 운영 체제 개발을 위해 소프트웨어 인재를 대거 영입하고 스마트폰 개발과 판매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고인이 회장으로 있는 동안 삼성그룹의 매출은 1987년 10조원에서 2018년 기준 387조원으로 약 39배 성장했다. 이 회장이 그토록 강조했던 ‘초일류’를 달성한 것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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