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올해 초부터 추진하는 건설공사 벌점제도 개편을 두고 엔지니어링 업계에서 반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명무실했던 벌점제의 실효성을 높여 안전사고와 부실시공을 막겠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부 방침대로 벌점을 단순 합산하면 규모가 큰 업체들일수록 많은 벌점을 받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벌점은 정부나 공공기관이 발주한 공사 입찰 시 감점 요인이 되기 때문에 엔지니어링 업계에서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여기고 있다.
논란은 국토부가 올해 1월 벌점 산정 방식을 개편하는 내용의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다. 기존에는 반기마다 한 건설업체가 받은 벌점을 공사나 용역 건수로 나눠 평균 점수를 산정했는데, 앞으로는 공사 및 용역 건수를 따지지 않고 합산하기로 했다. 공사 100건을 진행하는 업체가 벌점을 10점을 받았다면 기존에는 0.1점인데, 앞으로는 10점이 된다는 뜻이다.
국토부는 이런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가 대형 건설사의 불만이 높아지자 벌점을 경감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해 5개월 만에 재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엔지니어링 업체들은 경감 혜택이 미미해 실효성 논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재개정안에 따르면 별점 경감 방법은 두 가지다. 일정 기간 사망사고가 없으면 벌점을 최대 59%까지 경감해 준다. 정부의 현장점점 결과 관리가 우수한 업체들에도 벌점 0.2∼1점을 깎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사망사고 벌점의 경감 폭이 큰데 이는 오로지 시공사들에만 적용된다. 대형 건설사들은 벌점을 충분히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기자 재개정안에는 더 이상 반발하지 않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엔지니어링 업체들에 부과하는 벌점 기준을 기존보다 덜 엄격하게 바꿔 시공사에 비해 경감 효과가 오히려 더 크다”고 해명했다. 부실시공이나 안전관리에 소홀한 게 드러나면 시공사에 벌점을 주더라도, 설계와 감리를 담당한 엔지니어링 업체가 법적 의무를 다했다면 벌점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뒀다는 얘기다.
하지만 엔지니어링 업계는 그럼에도 벌점으로 인한 불이익을 피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부실시공이나 안전사고와 관련해서 받는 벌점보다 계측 오류 등 사소한 실수로 인해 벌점을 받는 경우가 훨씬 더 잦기 때문이다.
한 대형 엔지니어링 업체 사장은 “벌점 0.1점으로 입찰 당락이 좌우된다”며 “현행대로 벌점제가 바뀌면 대형 업체들은 국내에서 공공 입찰을 따내기 힘들어 해외 진출에도 비상이 걸린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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