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금 3000억원, 그림의 떡? LCC대표들의 절규[떴다떴다 변비행]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8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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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23일, 항공업계에서는 유례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대표들이 공동으로 정부에 공동 건의문을 낸 겁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경영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LCC 대표들이 긴급 금융 지원을 촉구했습니다. 대한민국 항공 역사상 공동 호소문을 발표한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LCC 대표들은 “지난해 일본 불매 운동에 이은 코로나 19 사태로 절체절명의 벼랑 끝에 서있다”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달 17일 국토교통부는 이미 항공사에 최대 3000억 원 규모의 긴급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왜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LCC 대표들이 금융 지원을 긴급하게 요청하고 나선 걸까요?

여기엔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항공사는 현금이 돌아야 합니다. 인건비와 유류비, 정비비 등 당장 지출해야 하는 현금성 비용이 많습니다. 현금을 벌어들이는데 가장 중요한건 항공권 판매겠지요. 그런데 경기 침체와 여행 수요 감소, 일본 불매운동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여행객이 급감했고, 비행기를 타지 않으니 현금흐름이 막힌 겁니다.

항공사로서는 다달이 월급을 지급해야하는 날이 오는데 이를 막기 힘든 상황까지 왔습니다. 비행기를 세워둬도 주기료(일종의 주차비)나 관리비 등이 계속 나가는 마당에, 현금이 안 들어오니 급박하게 현금 지원이 필요했던 겁니다. 비행기를 띄우는 것보다 세워두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3000억 원도 현재로서는 LCC들에는 그림의 떡입니다. 먼저 3000억 원을 항공사에 배분하는 주체는 KDB산업은행입니다. 그런데 항공사 지원에 대한 산업은행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습니다. 산업은행도 돈을 ‘회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돈을 빌려주는데, 항공사와 업계가 안 좋은 상황에서 돈을 빌려주기가 뭐한 것이죠. 산업은행 입장도 이해됩니다. 무분별하게 지원했다가 돌려받지 못하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뉴스1

국토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3000억 원을 지원해 달라”고 산업은행에 요청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산업은행이 국토부 소속도 아니고, 국토부가 국가 예산을 편성하는 부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취재를 해보니 이 3000억 원도 정부가 항공사들을 위해 특별히 편성한 것이 아닙니다. 기존에 중소기업을 지원하게 하기 위해 마련한 산업은행의 금융상품에 LCC를 끼워 넣은 겁니다. 국내 LCC 일부는 대기업 계열사로 분류되어 있어서, 중소기업처럼 지원받진 못합니다. 국토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LCC를 지원 대상에 포함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사실 이것도 국토부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입니다.

항공사들은 당장 돈이 급해서 산업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산업은행이 요구하는 조건이 너무 많았습니다. 기존 금융 지원 절차대로 한 것이죠. 심사에만 2~3개월이 걸립니다. 일정 금액 이상의 경우엔 신용 평가를 하고 담보를 요구합니다. 항공사의 가장 큰 자산은 항공기인데 대부분 리스로 빌린 항공기들이라 담보로 제공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지원 가능 액수를 최종적으로 정하기에 앞서 LCC들은 신용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회사가 어려워서 돈을 빌리러 갔는데, 회사 신용 평가를 한 뒤에 등급이 좋으면 돈을 빌려주겠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정부는 분명 어려운 LCC를 돕겠다고 했는데, 정작 어려운 LCC는 돈을 못 빌리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항공사의 누적 적자마저 불어나는 현 상황에서 시중 은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는 겁니다. 그래서 LCC 대표들이 “무담보, 장기 저리 조건 등 긴급하게 경영안정자금 지원을 해달라”고 거듭 요청을 한겁니다.

자, 비명에 가까운 절규로 LCC 대표들이 유례없는 호소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럼 이게 해결이 될까요? 취재 중에 만난 한 국회 관계자가 한 말이 어쩌면 답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국토부에 호소해봐야 안돼. 자금 지원 이런건 대통령이나 청와대에서 항공업계를 굽어 살피시어 한 마디 해주셔야 해결될 일이야”

항공사들은 현재 노선 운휴, 자산 매각, 원급 삭감, 유·무급 휴직, 임금 반납 등을 통해 스스로 고통 분담을 하고 있습니다. 악재가 연거푸 겹치면서 항공업계가 말 그대로 박살나고 있습니다. 혹자는 “모두가 다 어려운데 왜 항공사들만 도와줘야 되느냐”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지원의 당위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항공사들이 원하는 건 “국민의 세금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좋아지면 꼭 갚을 테니 빠른 자금 지원만 해 달라”는 겁니다. 정부가 돕기로 결정을 내린 이상, 각종 지원책이 생색내기 또는 말뿐인 허울로 남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오늘 상공으로 울려 퍼진 항공업계의 절규가 청와대에 꼭 닿았으면 합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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