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이나 한번 해볼까’ 하면 망한다…아무나 점주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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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1월 27일 13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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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례 점주가 쓴 ‘편의점하길 참 잘했다’(세븐이레븐 제공)© 뉴스1
유정례 점주가 쓴 ‘편의점하길 참 잘했다’(세븐이레븐 제공)© 뉴스1
유정례 점주가 자신이 운영하는 세븐일레븐 남대문카페점 계산대에서 상품을 들고 있다.2020.01.08(세븐일레븐 제공)© 뉴스1
유정례 점주가 자신이 운영하는 세븐일레븐 남대문카페점 계산대에서 상품을 들고 있다.2020.01.08(세븐일레븐 제공)© 뉴스1
직장 생활이 팍팍하거나 퇴직을 앞둔 이들은 하소연하듯 털어놓는다. “나도 편의점이나 한 번 해볼까?” 과거 예비 창업자들의 로망이 ‘치킨집’ 또는 ‘커피숍’이었다면 이제는 ‘편의점’이다.

“편의점주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로 한 번 열심히 해보겠다, 모르면 배워서라도 하루 8시간 이상 일하겠다, 이런 사람이 편의점주를 해야 합니다.”

유정례 세븐일레븐 점주(여·61)의 말이다. 그는 편의점 17개(현재 7개)를 운영했던 ‘편의점 운영’의 대가로 불린다. ‘나도 한번 해 볼까’는 생각으로 덤볐다가는 후회하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8년 말 기준 전국 편의점 수는 4만2258개. 대한민국 인구 1350명당 1개 꼴이다. 참고로 ‘편의점 왕국’ 일본의 경우 인구 2250명당 1개다. 인구 비율로 따지면 한국이 일본보다 편의점이 더 많은 셈이다.

최근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 인근 세븐일레븐 남대문카페점에서 유 점주를 만났다. 짧은 머리에 붉은색 스웨터를 입고 인터뷰 장소에 등장한 그는 요즘 표현으로 ‘여장부 포스’를 풍겼다. 유 점주는 자동·반사적으로 편의점 안을 샅샅이 훑어보더니 흐트러진 샐러드 위치부터 바로잡았다.

◇“스트레스에 몸무게가 42~43kg밖에 안 나갔어요”

마침 그의 저서 ‘편의점하길 참 잘했다_부제: 평범한 아줌마의 17개 편의점 운영’이 출간된 직후였다. 책을 출간할 만큼 유 점주는 편의점 업계 유명 인사다. 그는 서울 남대문구·종로·동대문구·인천 남동구(인천시청 인근) 등에서 점포 7곳을 운영하고 있다. 한때 17곳까지 운영했다. 당시 연 매출은 100억을 넘어섰다.

편의점 운영 전엔 ‘평범한 주부’였다. 결혼 전엔 남들이 그토록 다니길 바라는 은행에서 일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이었다. 어찌하든 남편·자식 뒷바라지에 열중하던 주부가 편의점을 차리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 점주는 저서에 솔직하게 털어놨다.

“딸의 수능이 가까워지자 나는 초조하고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남편이 가져다주는 돈만으로는 두 아이의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중략)…점포 오픈을 준비하는 두 달 동안 날마다 몸 낮추고 죄인처럼 지낸 덕에 필요한 금액만큼 차용증서를 쓰고 매월 원리금을 분할 상환하기로 약속하고 남편에게 (편의점 오픈에 필요한) 돈을 받아냈다.”(‘편의점하길 참 잘했다’, 18~31쪽)

유 점주의 첫 번째 점포는 지난 2007년 2월 건국대학교 스타시티 복합쇼핑몰 1층에 들어섰다. 상권이 좋다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달랐다. 자신이 점포를 열면 주변 점포도 바로 주인을 찾아 활기를 띨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주변이 휑하고 황량’해 사실상 1년간 개점휴업 상태였다.

유 점주는 인건비라도 줄이고자 직원을 최소한만 고용했다. 대학생 딸도 휴학계를 내고 유 점주를 도왔다. 당시 하루 15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코피를 쏟고 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스트레스에 살이 빠져 그때 몸무게는 42~43kg에 불과했다. 참고로 ‘여장부 포스’를 풍기는 그의 현재 몸무게는 54kg.

“건대 뒷골목에 가면 구제 파는 곳이 있어요. 1개당 500원 하는 구제 바지 5개를 사고 그거 입고 일했어요. 그전까지 저는 바지를 입은 적이 없어요. 집에서는 기본적으로 긴 원피스를 입고, 밖에 나가면 꼭 스커트 정장 차림을 했지요.”

악착같이 버티었더니 볕 든 날이 왔다. 매장들이 쇼핑몰에 잇달아 입점하면서 유 점주의 편의점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매출도 뛰었고 보람도 느꼈다. 다만 이것만으로 그가 ‘편의점 운영 대가’로 극찬 받는 배경을 설명할 수 없다.

◇“고가 주스를 파는 저를 ‘미쳤다’고 했어요”

인터뷰 중간에 무릎을 친 것은 그의 역발상 때문이었다. 대표적으로 100% 오렌지 원액인 보타니 주스를 판 것이었다. 보나티 주스 가격은 한 병에 3000원. 당시 기준으로 ‘고가’라 과연 팔릴까 우려했으나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주변에서 보나티 주스를 파는 저를 ‘미쳤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의 생각은 좀 달랐어요. 당시엔 남성이 여성을 이른바 ‘에스코트’해 극장에 왔어요. 남성들이 여자 앞에서 폼을 잡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비싼 주스에도 지갑을 과감히 열었어요.”

유 점주의 ‘우산 680개 완판 기록’은 업계에서 여전히 회자된다. 그는 잠재적 수요를 겨냥해 매장에 우산을 진열해 놓은 일화를 소개했다. 매장이 좁아 구석구석에도 우산을 욱여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기우제하듯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심야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갑작스러운 폭우에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쇼핑몰 안에 입점한 편의점. 유 점주의 편의점이다. 그는 점포에 우산 680개를 준비한 상태였다.

“편의점 현관 입구에 아예 우산을 꺼내다 놓고 팔았어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죠. 싫어도 우산을 살 수밖에 없었죠. 밖에 비가 오는데 나갈 수도 없고, 우산없이는 갈 데도 없고…… 기자님이라면 어쩌겠습니까?”

◇“절박하지 않은 지원자는 채용 안해요”

성실함과 역발상, 그리고 남다른 ‘고용 철학’은 유 점주의 성공 스토리를 설명하는 열쇳말이다. 그는 가히 ‘인사가 만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는 직원을 선발할 때 한 가지를 유심히 본다. ‘절박함’이다.

채용 공고를 보고 전화한 이에게 절박함이 있는지 살펴본다. ‘면접 보러 오겠느냐’고 물었는데 머뭇거리는 이들은 절대 고용하지 않는다. “지금 면접보러 가겠다”는 이들이 선발 대상이다.

“기존 메이트(점장·아르바이트생 등 의미)들도 면접 지원자를 보게 합니다. 메이트들이 맞교대하거나, 동시간 대에 일할 때 지원자를 오게 해요. 같이 일하는 사람의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그들이 ‘오케이’해야 최종적으로 지원자를 선발하지요.”

유 점주가 그렇게 뽑은 아르바이트생들이 세븐일레븐 남대문카페점에서도 일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부부’ 아르바이트였다. 45살 동갑내기 곽모·이모씨(여) 부부다. 두 사람의 거주 지역은 경기도 의정부시다. 이들이 세븐일레븐 남대문카페점까지 출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1시간 30분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유’를 묻자 곽씨는 흥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사장님(유 점주)을 보면 엄청 멋있고 카리스마가 넘쳐요. 저 분 밑에서 열심히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알고 보면 정도 많으시고요.”

이 얘기를 들은 유 점주의 마음은 어떠할까. ‘편의점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까. 곽씨 부부와 나란히 선 유 점주는 수줍게 웃었다. 그리고 이내 세 사람은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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