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6 따르다간 중환자실行” 中 IT업계 젊은 직원들 ‘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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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알리바바 등 꿈의 직장… 장시간 근무에 건강-삶 여유 잃어
“프로그램 개발자 목숨도 중요” 웹사이트 통해 反996 운동 확산

“프로그램 개발자의 목숨도 중요하다(Developers‘ lives matter).”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중국 정보기술(IT) 업계의 젊은 종사자들이 이른바 ‘996’ 업무 시간 제도로 불리는 관행에 본격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996’은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9시 퇴근하는 주 6일제 근무 제도를 가리킨다.

지난달 말 중국 IT 업계에 근무하는 일부 개발자들은 ‘996.ICU’라는 이름의 ‘반(反)996 운동’ 웹사이트를 처음 만들었다. 웹사이트 이름은 ‘996에 따라 일하다가는 중환자실(ICU)로 간다’는 뜻이다. 프로그램 개발자답게 자신들이 자주 사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소스 공유 플랫폼에 반996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웹사이트 첫 화면 하단에 영문으로 ‘프로그램 개발자의 목숨도 중요하다’고 쓴 것은 2012년 미국에서 시작된 흑인 민권 운동의 슬로건 ‘Black Lives Matter’를 차용했다. 중국 IT 업계 종사자들이 저항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이 웹사이트가 이번 주에 중국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별(좋아요)을 준 사람이 7일 18만 명을 넘어섰다. 이 플랫폼에 개설된 다른 인기 웹사이트가 많아야 수천 개의 별을 받은 것에 비하면 엄청난 인기다. 중국인들은 ‘반996’ 운동을 “프로그래머들의 반란”이라고 부르고 있다.

996은 2년 전부터 중국 IT 업계에서 일상화됐다. 중국에서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IT 기업에 들어가 봐야 장시간 과로에 시달리다 건강을 해치고 삶의 여유도 잃어버린다는 불만이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확산됐다. 급기야 그 불만이 반996 웹사이트를 통해 폭발한 것이다. 중국 노동법은 노동시간이 하루 8시간, 일주일 4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중국 IT 업계 종사자들은 반996 웹사이트를 통해 996 기업 48곳의 명단과 근무시간을 공개했다. 화웨이는 ‘9106’이다. 9시에 출근, 오후 10시까지 퇴근하는 주 6일 근무라는 뜻이다. 역시 ‘9106’인 마윈 회장이 이끄는 알리바바그룹 계열의 모바일 간편결제 기업 앤트파이낸셜도 명단에 올랐다. 반996 웹사이트는 “정말 직원을 개미(앤트) 취급한다”는 전 앤트파이낸셜 직원의 발언을 소개했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징둥그룹에서 일하는 첸샤오췬(錢曉群) 씨는 한 매체에 “일한 지 1년이 안 됐지만 996은 물론이고 997, 9117, 심지어 007까지 경험했다”고 말했다. 007은 하루 24시간 꼬박 일했다는 얘기다. 그는 “중국 젊은이들의 가장 이상적인 꿈은 알리바바 텐센트 징둥 등 IT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대학 때는 오후 10시에야 퇴근해 일 외에 다른 것은 전혀 생각도 못 하게 될 줄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관영 매체들까지 가세했다. 중국청년보는 “시간을 맞춰놓은 자명종 같은 젊은이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의 웹브라우저들은 3일부터 이 웹사이트 접속을 막는 통제에 나섰다. 웹사이트 주소를 치면 “사기 정보가 포함돼 있다”고 나온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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