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 말고 상온”… CJ 간편식 승부수 통했다

  • 동아일보

비비고 김치찌개 등 4월부터 美 수출


2015년 12월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철하 CJ제일제당 대표이사 부회장(65)이 공장 생산 직전 단계까지 온 비비고 두부김치찌개를 맛보는 날이었다. 침묵 속에 국물을 떠먹어 보던 김 부회장은 “되네!”라고 말했다. “하니까 되네, 상온도!”

다음 달이면 비비고 두부김치찌개 초기 물량 1만2000개가 배를 타고 미국으로 나간다. 5월엔 비비고 육개장이 미국에 수출된다. 지난해 6월 육개장 사골곰탕 두부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4종으로 출시된 비비고 간편식은 이달까지 누적 300억 원 매출을 올리며 올해 1월 기준 국·탕·찌개 시장에서 1위로 올라섰다. 품목도 9종으로 늘었다.

○ CJ, ‘상온 제품’에 승부 건 비밀

기존의 국내 간편식 시장은 조리 이후 바로 냉장·냉동한 제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상온 제품은 멸균 처리 과정에서 맛이 없어진다는 게 식품업계 중론이었다. 그런데도 CJ가 간편식 시장에 뛰어들면서 상온 제품을 고집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이미 피코크(이마트) 싱글즈프라이드(홈플러스) 요리하다(롯데마트) 등 유통 3사가 점유하고 있는 냉장·냉동 매대에선 승부가 어렵다고 판단했고 △CJ그룹 전체가 사활을 걸고 있는 해외 진출을 위해 처음부터 수출용으로 개발하자는 것이었다.

CJ는 이미 상온 국 제품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 2000년대 ‘맘스’라는 자체 레토르트 브랜드가 나왔다가 사라졌다. 백설 미역국·북엇국 제품도 냈지만 오뚜기에 밀려났다. 2013년 결국 관련 사업을 모두 중단했다.

한 번의 실패 경험이 있었기에 CJ 식품연구소의 이번 개발 기간은 더 길고 지난했다. 김 부회장은 매주 목요일마다 연구소를 찾아와 “냉장·냉동보다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 “하기 전에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냉장·냉동과 달리 상온 제품은 121도의 고온에서 살균 처리를 해야 하지만 식감은 살려내야 했다. 김치찌개 김치의 아삭한 맛을 위해 미생물이 많은 고기를 포기하고 두부를 더 넣었다. 육개장 대파의 흰 부분은 꽉 차 있고 푸른 부분은 비어 있어 각각 어떤 온도로 살균하는 것이 최적의 조건인지도 실험해야 했다.

○ “냉장·냉동보다 맛있게”


27일 찾은 충남 논산시 CJ 비비고 간편식 공장 안에는 고기 삶은 육수 냄새가 가득했다. 3t들이 통 여러 개에서 사태, 양지가 펄펄 끓고 있었다. 방진복을 입은 공장 직원들이 삶아 낸 양지를 집에서 조리하듯 일일이 손으로 찢었다.

비비고 육개장 제품은 직접 고기 피를 빼고 삶아내는 과정에만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대부분의 제품이 미리 제조된 진액 수프를 물에 푸는 식으로 밑 국물을 만드는 것과 달리 비비고는 직접 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는 공정을 고집했다. 현장에서 만난 임홍빈 생산팀장(47)은 “수작업이 너무 힘들어서 처음엔 공장에서 다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했다. 하지만 수프 국물과는 깊은 맛이 다르고, 결국 그게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국내 성공에 힘입어 비비고는 처음 개발 목표와 같이 해외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수출 국가에 따라 제품을 조금씩 변주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었다. 국내산 고기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 미국 특성상 식감이 비슷한 버섯이 들어간 버섯 육개장을 새로 개발했다. 국내에선 1, 2인분 기준으로 500g에 팔고 있지만 국물 양을 늘려 달라는 일본 수요에 따라 600g 제품도 개발해 수출했다. 상온 제품은 냉장 냉동 컨테이너가 필요 없어 수출 비용과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비비고 국·탕·찌개 간편식은 출시 1년도 안됐지만 올해 매출 목표로 600억 원을 잡고 있다. 2015년 출시된 히트 제품 비비고 왕교자의 올해 목표가 1500억 원이다. 이남주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부장(41·여)은 “경쟁사에서도 김치찌개 제품이 상온으로 나왔다가 소비자에게 외면받자 결국 냉장으로 간 사례가 있다. 그만큼 비비고 간편식의 성공은 맛에서도 뒤지지 않고 수출에도 유리한 간편식 제품이 가능하다는 걸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논산=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비비고#cj#상온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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