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돼 22시간 밤샘 조사를 받고 어제 오전 귀가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 공여 혐의로 금명간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 이어 SK 롯데 부영 등의 재벌 총수도 줄줄이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가 ‘재벌 손보기’로 번지는 느낌이다.
재벌 총수들은 최고 권력자인 박 대통령의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돈을 바쳤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특검은 재벌들이 대가를 바라고 뇌물을 줬다고 본다. 삼성의 경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찬성을 이끌어내려고 최순실 모녀의 승마 지원 명목으로 거액을 건넸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5년 7월 미국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합병을 무산시키려 할 때 국내 여론은 합병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소액주주들도 엘리엇 같은 해외 ‘먹튀 자본’을 불안해하며 국익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삼성 편에 섰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이 청와대 지시만으로 찬성표를 던졌는지 의문이다.
이번 일은 과거 재벌 총수가 개인이나 그룹 비리로 구속됐던 사안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권력이 먼저 ‘기업의 팔을 비틀어’ 돈을 뜯어냈다는 점에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뇌물죄 적용 여부를 놓고 검찰은 물론 특검도 고민했을 것이다. 권력의 강요를 인정하면서 돈을 준 쪽을 뇌물공여죄로 처벌한 전례도 거의 없다. 꼭 구속해야만 하는 사안인지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데 토를 달 국민은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먼저 돈을 요구한 권력과, 보복이나 불이익이 두려워 돈을 준 기업은 죄질의 무게 차이가 크다. 돈을 주고받은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다툼이 없다. 다만 돈의 성격에 대한 법적 해석 차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는 법원에서 법적 성격을 명확히 판단해 상응한 책임을 물으면 될 것이다.
삼성전자에 인수가 결정된 미국의 세계 최대 전장(電裝) 전문업체 하만의 주주들이 최근 합병 과정에 반대하며 집단소송을 냈다고 한다. 주주 설득을 지휘해야 할 이 부회장이 만일 구속된다면 80억 달러(약 9조 원)를 들인 역대 최대의 인수합병(M&A)이 무산돼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자율주행차 기술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를 비롯해 삼성의 지분을 가진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단체 행동에 나설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300조 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 총수의 인신 구속에는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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