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불황에 골리앗 크레인 애물단지로… 줄줄이 ‘눈물의 해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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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조선소들이 세계적인 수주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최근 몇 년 새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조선소 대형 크레인들이 ‘골칫덩이’로 전락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달아 철거 요청을 하면서 한때 조선업 부흥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골리앗 크레인들이 눈물의 해체에 들어갔다. 다른 자산들 역시 고철 값에 내놔도 팔리지 않으면서 ‘세계 1위’ 한국 조선업이 가라앉고 있는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 계약금 안 들어왔지만 ‘눈물의 철거’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성동산업 마산조선소 부지에 있는 700t급 골리앗 크레인은 지난달부터 철거에 들어갔다. 성동산업 크레인은 총 중량 3200t, 높이 105m의 대형 설비다.

 성동 크레인 매각은 한국판 ‘말뫼의 눈물’로 비유되기도 한다. 말뫼의 눈물은 스웨덴 말뫼 시의 코쿰스 조선소가 조선업의 쇠퇴로 골리앗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에 넘기자 스웨덴 국영방송에서 장송곡을 내보내며 ‘말뫼가 울었다’고 보도한 사건을 말한다. 현대중공업은 막대한 철거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크레인을 1달러에 사왔다. 이처럼 조선소의 크레인은 조선업의 흥망성쇠를 대변하는 상징물이다.

 한국판 ‘말뫼의 눈물’의 속사정은 더 딱하다. 성동산업은 2008년 270억여 원을 들여 골리앗 크레인을 만들었다. 하지만 조선업 불황으로 자금난에 빠지면서 채권단이 2013년 경매로 내놨고 최근 루마니아 조선소와 매각 계약을 맺었다. 계약금액은 30억 원을 밑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아직 계약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철거부터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 크레인을 해체해서 이동하는 데에만 수십억 원의 비용이 든다. 철거부터 나선 것은 지자체에서 산업단지 개발에 걸림돌이 된다며 하루빨리 철거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요청했기 때문이다.

 창원시 관계자는 “크레인이 철거돼야 산업단지가 조성될 수 있는데 부지를 사들인 기업들이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이어 “절박한 상황에서 맺은 계약이라 대금을 차차 주겠다는 말을 듣고 철거작업부터 하고 있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아직 팔리지 않은 300t급 크레인도 함께 해체해 일단 다른 장소에 보관한 뒤 매수 대상을 찾기로 했다.

 경남 통영에서 휴·폐업 중인 신아에스비, 해진 등 3개 조선소의 크레인 27개도 흉물로 변하면서 지자체의 골칫거리가 됐다. 특히 이들 조선소 밀집지역은 통영 관광특구와 불과 20∼3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통영시는 최근 조선소 크레인의 철거 시기를 앞당겨달라는 공문을 각 회사와 채권단에 보냈다. 통영시 관계자는 “조선업 경기가 좋을 때는 조선소가 관광명소처럼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미관상 안 좋기도 하고 바람이 불면 대형 크레인이 넘어져 안전사고가 나지 않을까 주민들이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 “지금 팔면 고철 값 수준”

 플로팅독(floating dock·해상 선박 건조대)도 ‘헐값’에 내놔도 사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다. 플로팅독은 조선업이 호황이어서 육상의 독이 꽉 찰 때 바다에 띄워놓고 배를 만들거나 수리하는 건조대다. 지금은 일감이 바닥나면서 조선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매각 1순위’ 신세가 됐다.

 STX조선해양은 올해 초 STX중공업 소유의 플로팅독을 임차해 쓰다가 터키 수리조선소에 팔았고 나머지 플로팅독 1기도 팔려고 했지만 사겠다는 곳이 없어 국내 수리조선소에 임대했다. STX조선 관계자는 “플로팅독 1기 제작비는 1000억 원 정도지만 지금 팔면 고철 값 수준이고 매수자도 없어 당분간 국내 수리조선소에 임대해 사용료를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SPP조선도 플로팅독을 지난달 100억 원 정도의 ‘헐값’에 팔았다.

 유례없는 수주 절벽에 전 세계 조선소는 402곳만 남았다. 호황기였던 2009년 931곳에 비해 57%나 줄었다. 한국 조선소는 2009년 56개에서 현재 47곳으로 줄었다. 중형 조선업체 관계자는 “조선소 핵심 자산들을 헐값에 내놔도 팔리지 않는 것은 조선업 불황의 끝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조선#불황#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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