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재협상 현실화땐 美 공세 0순위는 자동차 관세

  • 동아일보

[트럼프노믹스/한국경제 갈 길은]<2>기로에 선 자유무역협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비판적인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한미 FTA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자동차, 섬유, 철강 등 일부 품목에 대해선 철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11일 정부 관계자와 통상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미 FTA 재협상이 이뤄진다면 자동차가 ‘0’순위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트럼프는 올해 8월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시에서 열린 ‘디트로이트 성장 클럽’에 참석해 경제정책 연설을 하던 중 한미 FTA에 대해 “미국 내 일자리를 죽이는 협정(job killing trade deal)”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디트로이트 시는 미국 자동차산업의 쇠락으로 높은 실업률과 재정난 등을 겪고 있는 ‘러스트벨트’(쇠락한 중부 공업지대)의 상징적인 장소다. 트럼프의 연설은 효과를 거둬 미시간 주는 1988년 대선 이래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트럼프를 선택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가 자동차 재협상을 주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한미 FTA 재협상으로 ‘양허(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다른 회원국에 대한 약속)’가 정지된다면 FTA 특혜관세의 효력이 종료되고 양국 간 관세는 ‘최혜국대우(MFN)’ 관세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MFN 관세율은 8.0%인 반면 미국은 2.2%다. 관세가 다시 붙게 되면 국내 자동차업계의 대미 수출이 타격을 받겠지만 한국의 관세율이 더 높은 탓에 미국의 대한 수출도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를 고려할 때 미국은 양허정지와 함께 관세율 상향 조정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FTA 이행법에 따라 두 나라 간에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에서 추가적인 관세 인상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대규모 무역적자를 이유로 미국이 상식적인 수준을 뛰어넘는 관세율 인상을 요구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한미 FTA 이후 한국의 승용차 무역흑자는 2011년 83억 달러에서 2015년 2배 가까이 되는 163억 달러로 증가했다. 미국 무역법 122조에는 국제수지 위기 조치 수단으로 모든 수입품에 150일 동안 1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

 미국이 강점을 지닌 분야인 법률 의료 등과 같은 서비스시장 문호를 확대해 달라는 요구도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FTA에 따르면 법률시장 개방은 미국 로펌과 국내 로펌의 합작 법인 설립을 허용하고 합작 법인을 통해 국내 변호사를 고용하도록 허용하는 게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한미 FTA 재협상을 대비해 산업별로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하고 협상이 이뤄진다면 상호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미국을 설득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명박 정부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았던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재협상이 이뤄지게 된다면 최근 4년간 한미 FTA에 대해 미국이 갖고 있는 불만뿐만 아니라 우리가 미국 측에 갖는 불만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조급해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트럼프노믹스#한미fta#자유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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