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학동로 까스텔바쟉 논현플래그십갤러리에서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왼쪽)과 강수호 형지에스콰이아 대표가 까스텔바쟉 가방을 들고 밝게 웃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막 장사를 시작한 20대 청년은 출근길 전철에서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꿈을 키웠다. 성동구 성수동 근처를 지날 때마다 바라본 빌딩에는 ‘에스콰이아’라고 써 있었다.
‘언젠가 저런 회사의 주인이 되고 싶다.’
30여 년이 지난 2015년, 그는 실제로 토종 제화업체 에스콰이아를 인수하며 그 꿈을 이뤘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 이야기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학동로 ‘까스텔바쟉’ 논현플래그십갤러리에서 만난 최 회장은 “어릴 때 정말 가난했지만 꿈이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며 “에스콰이아를 100년 갈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함께 인터뷰한 전문경영인 강수호 형지에스콰이아 대표는 “청산위기를 겪던 에스콰이아를 인수하면서 반드시 흑자전환을 해내겠다고 다짐했다”며 “그 꿈이 올해 현실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영위기를 겪던 에스콰이아는 형지가 인수한 뒤 상승세를 타고 있다. 올해 1∼8월 매출이 13% 올랐고, 같은 기간 적자 부문도 48% 줄어들었다. 액면가보다 할인돼 여기저기서 팔리던 구두 상품권도 청산했다. 강 대표는 “(할인) 상품권은 마약과 같다. 건전한 브랜드로 키우려면 할인 상품권을 없애야 하지만 단기적으로 매출이 감소하는 금단 증상이 온다”며 “우리는 잘 이겨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패션그룹형지는 어느 때보다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랜 소비침체로 의류 대기업들도 브랜드 구조조정에 나선 상황이지만 형지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3년 전부터 의류업체 우성아이앤씨와 유통 쇼핑몰 바우하우스를 인수했고, 지난해 3월에는 에스콰이아를 사들였다. 올해 9월에는 프랑스 패션 브랜드 ‘까스텔바쟉’ 본사를 인수했다.
이와 같은 행보에는 그의 사업 철학이 숨어 있었다. 잠재력 있는 브랜드를 찾아 키우는 것이다. 사실 인수 전 에스콰이아와 까스텔바쟉은 둘 다 경영관리 실패로 고전하던 브랜드였다. 최 회장은 “인수를 할 때는 형지와 시너지가 나는 게 우선이고 좋은 물건이 싸게 나왔을 때 사는 게 합리적”이라며 “경영만 잘하면 둘 다 반석 위에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강 대표는 “에스콰이아야말로 장인들이 모여 있는 한국 제화업계의 역사인데 안타깝게 위기를 겪었다”라며 “55년 된 에스콰이아에는 20년 이상 근무한 기술자만 70명이 넘는다. 이게 다 자산이다”라고 했다.
최 회장은 “까스텔바쟉도 비슷한 ‘자산’이 있다”며 “디자이너 장샤를 드 카스텔바자크도 프랑스에서는 무형문화재급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카스텔바자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제복을 만들기도 했다.
패션그룹형지의 올해 매출은 1조1000억 원으로 지난해(1조800억 원)보다 약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 회장은 “경기가 어렵다 보니 가격이 낮은 옷도 잘 안 팔린다”며 “더 바짝 긴장해서 무차입 경영 등 내실을 더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까스텔바쟉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 중국에서 까스텔바쟉을 소개하는 설명회를 가졌는데 분위기가 좋았다. 면세점에도 곧 들어간다”고 했다. 이어 “‘K뷰티’처럼 ‘K패션’도 해외로 나가야 할 때”라며 “까스텔바쟉 핸드백은 스와치 시계처럼 여러 개 두고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골라 메고 다니는 그런 제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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