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R/The Big Idea]편향없는 컴퓨터분석 활용… 최종결정은 인간 몫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노벨 경제학상 카너먼 교수가 제시한 ‘기업경영 오판방지법’

 직장인 백모 씨는 몇 개월 전부터 가슴이 답답함을 느꼈다. 그러나 평소 종종 방문하던 병원에선 여러 차례 흉부 방사선 촬영을 하고도 ‘이상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가슴의 통증이 심해진 백 씨는 병원을 다른 곳으로 옮겨 검사를 받았고 이 병원에서 폐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우리는 의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의 병을 정확히 진단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의사 결정은 현재의 기분이나 마지막 식사 시간, 날씨 등 엉뚱한 요인들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행동경제학의 대가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인간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인을 ‘노이즈(noise·잡음)’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판단 오류를 유발하는 노이즈가 많은 기업에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고 경고했다.

 카너먼 교수는 세계적 경영저널인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10월호에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줄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시했다. 본보가 발행하는 HBR 한글판에 실린 카너먼 교수의 핵심 아이디어를 요약한다.

○ 노이즈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

 노이즈는 자주 발생한다. 같은 데이터라도 서로 다른 상황에서 제시되면 전문가들조차 매번 다른 판단을 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각기 다른 날 주어진 업무의 완성 시간을 추정하게 하면 그들은 평균 71%나 다른 시간을 제시했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병리학자에게 조직검사 결과의 심각성을 두 차례 평가하게 했을 때 그 결과 사이의 상관관계는 0.61(만점 1.0)에 그쳤다. 그들의 진단이 꽤 오락가락한다는 뜻이다.

 노이즈는 생각보다 훨씬 빈번하게 발생한다. 카너먼 교수는 “판단이 내려지는 곳에는 노이즈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 노이즈의 폐해를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 내린 의사결정의 결과는 시간이 한참 지나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대출 담당 직원은 최소 몇 년을 기다려야 자신이 승인한 대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다. 거부당한 대출 신청자에게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는 알아낼 방법도 없다.

 또 기업들은 직원들의 다양한 판단에 노이즈가 개입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도 한다. 숙련된 전문가들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직장 내 동료들의 전문성에 대해서도 매우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임직원이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에 대해 과도한 기대감을 갖는 조직원도 상당수다.

 많은 기업은 노이즈가 심각한 의사결정의 편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노이즈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는 사례도 많지 않다.

○ 노이즈 줄이기

 노이즈 문제를 가장 철저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단순한 통계 알고리즘을 활용한 예측과 결정이 전문가의 결정보다 정확하다는 사실은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알고리즘의 가장 큰 장점이 노이즈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과 달리 컴퓨터는 특정 공식을 활용해 투입한 정보에 대해 늘 한결같은 판단 결과를 내놓는다.

 카너먼 교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많은 사람은 방대한 데이터를 복잡한 통계 방법으로 분석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중요한 몇 가지 데이터만 입력해서 만든 알고리즘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은행에서 대출 여부를 판단하는 알고리즘을 만든다면 상식적인 선에서 채무불이행 여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요소를 우선 추출하면 된다. 대표적으로 대출자의 현재 자산, 신용도, 연봉 등이 채무불이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런 변수들이 실제 대출자의 채무불이행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를 과거 데이터를 통해 간단한 통계 방법론으로 분석해서 규칙을 찾아내면 어렵지 않게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다. 다양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이처럼 단순한 방법으로 만든 알고리즘을 활용한 예측이나 의사결정의 질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 단순한 알고리즘만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위험한 측면도 있다. 복잡한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컴퓨터 알고리즘의 결과물에 대해 인간의 판단력이 더해져야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알고리즘을 통제해야 한다. 알고리즘은 최종 결정을 내리는 전문가들의 참고자료로 활용돼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 판사들이 피고를 가석방해야 할지를 판단할 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알고리즘인 ‘공공안전평가’는 컴퓨터의 판단을 참고하되 최종 결정은 인간이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미국 켄터키 주에서 이 시스템을 6개월 동안 사용해본 결과 석방된 피고인들의 수는 늘어났지만 이들의 범죄율은 오히려 15%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알고리즘과 판사들의 판단이 결합하면서 이전보다 더 정확한 결정을 했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 훈련을 판단으로

 기업에서 판단 오류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은 엄청난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간단한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이런 손실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지만 실제로 이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조직 내의 강력한 저항이나 반발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특정 환경에서는 알고리즘을 만들기가 불가능한 상황도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알고리즘 외에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의사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 게 대표적인 대안이다. 여러 전문가가 함께 토론을 하고 정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노이즈를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수가 함께 논의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목소리가 큰 한 사람이 전체의 의견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드시 점검해야 할 사항을 따로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꼼꼼하게 필요한 항목을 검토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 참석자들이 사전에 회의 안건을 꼼꼼히 검토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와 시간도 확보해줘야 한다.

 카너먼 교수는 “조직에서 노이즈를 찾아내기는 무척 어렵지만 매우 흔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기업이 이로 인해 치러야 할 비용도 매우 크다”며 “노이즈로 인한 비용을 현금으로 생각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노벨#경제학상#카너먼 교수#기업경영#오판방지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