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양파로 농촌 성공시대” 김영균 한국에코팜 대표가 즉석밥용으로 쓰이는 ‘중모 1017’을 경북
예천군 지보면 논에서 재배하고 있다(맨위쪽 사진). 경남 함양군에서 양파를 재배하는 박덕규 씨는 이마트를 통해 판로를 보장받았다(맨아래쪽 사진).
예천=홍진환 기자 jean@donga.com·이마트 제공
농민과 대기업은 그동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농민과 창농인들은 일자리와 수익을 빼앗긴다는 생각에 대기업의 농업 참여에 반대해 왔다. 대기업들 역시 농업에 대한 투자를 껄끄럽게 생각했다. 대기업의 참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농업의 생산성 향상은 더디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즉석밥용 쌀 종자를 생산하는 창농기업 한국에코팜과 CJ제일제당의 종자개발 자회사 CJ브리딩의 협력은 창농인과 대기업 상생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대기업과 창농인의 윈윈 사례를 들여다봤다.
○ 기업이 뿌린 씨앗에 살아나는 창농
아버지와 함께 벼농사를 짓던 김상균 씨(37)는 10년 전 소량의 종자를 대량으로 늘려 농가에 보급하는 ‘종자 채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쌀 소비가 줄며 벼농사의 미래를 걱정하던 시기였다. 김 씨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형 영균 씨(40)와 함께 2009년 채종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어려움을 겪었다. 우선 종자를 선뜻 맡기는 기업이 없었다. 국내 종자 산업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다국적기업은 고추 씨앗 하나를 주는 것도 꺼렸다.
결국 정부 기관인 국립종자원 등을 3년간 찾아다니며 사업을 준비한 끝에 2012년 한국에코팜을 설립했다. 한국에코팜은 양파 쌀 토마토 고추 수박 등 다양한 작물의 ‘원종(原種)’을 보급종으로 대량 생산하는 종자 채종 기업이 됐다.
설립 이후 문제는 성장성이었다. 정부 기관의 종자 연구 목적은 다양한 국산 종자 개발이었을 뿐 증식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정부 기관들은 종자 채종 기업에 소량의 종자만 공급해 증식시켰다. 한 종자를 많이 증식시킬수록 매출이 느는 종자 채종 기업은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코팜은 올해 3월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농촌진흥청은 자체 개발한 쌀 종자인 ‘중모 1017’을 상품화할 기업으로 CJ제일제당의 CJ브리딩을 선정했다. 중모 1017은 맛이 좋고 입자 크기가 고르기 때문에 즉석밥 용도로 제격인 종자였다. CJ브리딩은 한국에코팜에 이 종자의 증식을 맡겼다. 농진청이 개발한 한 알의 쌀이 한국에코팜을 거쳐 대량 증식되는 것이었다.
한국에코팜은 5월경부터 CJ브리딩으로부터 중모 1017을 받아 키우고 있다. 올해 생산될 종자만 18t에 이른다. 한국에코팜은 이 중 10t을 다시 종자 증식에 쓰고 나머지 8t은 햇반용 쌀로 CJ제일제당에 납품할 계획이다. 이처럼 판로가 보장된다는 점도 기업과의 상생이 주는 효과다. 한국에코팜 김상균 대표는 “CJ그룹 회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올해 매출은 지난해의 1.5배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코팜과의 협업은 CJ브리딩에도 이득이다. 한국에코팜이 CJ브리딩에 제시한 조건은 농업기술실용화재단 등 국가 기관을 통해 종자를 채종했을 때보다 비용이 3분의 1가량 적었다. 종자 채종 기술에 대해 밝히기를 꺼리는 국가 기관과 달리 한국에코팜은 기술 교류에도 적극적이었다.
다른 모범 사례도 있다. 이마트는 농림축산식품부와 손잡고 ‘국산의 힘 종자 지원 기금’을 조성해 경남 합천군의 농가 3곳에 국내 품종인 ‘라온파프리카’ 종자 구입비 5000만 원을 지원했다. 파프리카 이외에도 ‘이조은플러스 양파’ ‘대박나 양배추’ 등 국내 품종 농산물은 이마트를 통해 각각 지난해 6월과 10월부터 판매됐다. 이 품종들은 지금까지 1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종자 지원 기금으로 재배하는 품목을 점차 늘려 나가 올해 말까지 관련 매출로 36억 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 유통 정보기술(IT) 대기업도 농촌과 상생 추진
창의적 창농 아이디어를 가진 농업인들도 판로 개척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아무리 사업 아이템이 좋아도 기업이 선점한 유통 판로를 홀로 뚫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 기업들이 먼저 농촌에 손을 내밀어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2009년 숨겨진 우수 농산물을 찾아 ‘명인명촌’이라는 농산물 브랜드를 만들고 서울 신촌점 등 13개 지점을 통해 농민들에게 판로를 제공하고 있다.
식품 기업들은 계약 재배 형식으로 상생을 꾀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경기 평택시 오성면에 있는 ‘미듬영농조합’을 통해 구입한 친환경 쌀과자 등을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SPC그룹 역시 전남 강진군(파프리카), 충북 영동군(청포도), 경남 진주시(토마토) 등과 업무협약을 맺고 농산물을 파리바게뜨 등 계열사에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IT 기업도 창농 지원에 동참했다. 네이버는 2014년 농산물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산지 직송 서비스인 ‘푸드 윈도’ 코너를 개설했다. 또 지난해부터 총 900여 명의 6차산업인에게 모바일 홈페이지 ‘모두(modoo)’를 활용해 사업을 홍보하는 법을 교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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