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트렌드를 연구하는 김희정 피데스개발 R&D센터 소장은 최근 주택공급 우려에 대해 “분양물량뿐 아니라 입주 예정
물량까지 고려해 분석하면 아직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오히려 서울의 경우 멸실에 비해 공급이 적어 전세난이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베이비부머(1955∼63년까지 태어난 세대)와 그 자녀 세대인 에코부머(1979∼97년생)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앞으로 주거 공간 트렌드가 많이 바뀔 겁니다. 이에 따라 다양한 맞춤형 주거 상품이 개발돼야 합니다.”
김희정 피데스개발 R&D센터 소장은 부동산시장의 대표적인 상품 기획 전문가다. 2009년부터 거의 매년 인구, 문화, 소득 등 사회현상 변화가 주거 문화에 미치는 조사한 뒤 ‘주거 공간 7대 트렌드’를 발표했다.
김 소장은 “올해는 주거 소비 수요가 분화되면서 아파트 이외의 틈새 상품이 다양하게 선보일 것”이라며 “월세에 대한 거부감이 줄면서 다채로운 유형의 임대주택이 등장하는 현상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22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일보사에서 김 소장을 만나 앞으로 새롭게 등장할 주택시장의 변화를 짚어봤다. 합치고 바꾸고… 베이비붐·에코세대 주목
―과거 예측이 현실화된 사례가 있나?
“2009년 이후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주택시장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봤다. 가족이 늘고 집을 계속 넓혀 가던 시대가 저물고 ‘주택 다운사이징’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중소형 시장 강세로 확인됐다. 은퇴한 남편들이 집에 머무르면서 남성이 주택시장의 주요 소비자로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현실화됐다. 남편만의 드레스룸, 남성의 가사활동을 고려한 주방, 단지 내 남성 커뮤니티 시설 등이 등장했다. 이 밖에 공유주택, 시니어를 위한 맞춤형 주거 공간, 캥거루족을 위한 세대 구분형 아파트 등도 이미 시장에 반영됐다.”
―중소형 주택 강세는 계속될 것인가?
“사실 ‘다운사이징’보다는 ‘핏(fit) 사이징’이 적절한 용어다. 집을 무작정 줄여 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사이즈인 ‘인당십평(人當十坪·1인당 주거 공간 33m²가량), 아파트로 따지면 전용 85m² 정도 크기로 모아질 것이다. 과거보다 면적이 줄어든 만큼 앞으로 집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기본 기능에 충실한 공간 위주로 재편된다. 손님맞이, 운동, 수납, 공부 등을 단지 내 공용공간에서 해결하게 될 것이다. 중대형을 선호했던 베이비부머는 거실과 주방을 넓히고 방을 줄이는 등의 공간 리모델링을 통해 품위 있게 집을 줄여 나갈 것으로 본다.”
―올해와 내년에 가장 눈에 띌 트렌드는?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베이비부머와 에코부머가 주택시장의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주거 공간에 변화가 올 것이다. 자녀의 결혼·독립으로 기존 집을 두 집으로 나누거나, 손자·손녀 양육을 위해 큰 집 하나로 이사해 함께 사는 등의 현상이 많이 나타날 것이다. 필요에 따라선 자녀의 교육, 통근 등을 위해 서울 도심의 부모 집과 신도시의 자녀 집을 맞바꾸는 사례도 나타날 것이다. 젊은 세대가 결혼 후에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분가할 능력도 줄어들면서 자녀 세대의 필요에 따라 부모들의 주거 형태가 바뀌는 경향이 나타날 것이다.
이 밖에 집 근처에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여가를 즐기려는 수요가 늘어나 단지 내 산책로, 체육관, 집 근처 대형 복합쇼핑센터 등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것이다. 월세에 대한 거부감이 줄면서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준공공 임대주택, 민간 임대 사업이 활성화되고 초소형 모바일 호텔, 재건축·재개발 이주 수요를 겨냥한 단기 월세 등 새로운 형태의 임대주택도 급증할 것이다.” 분양 대신 입주물량 봐야… 공급과잉 아니다
―최근 분양이 급증하면서 주택공급이 과잉이라는 우려도 많은데….
“분양 물량, 인허가 물량만 보면 이런 우려를 가질 수 있다. 분양에서 입주까지 2, 3년의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입주 물량을 봐야 한다. 입주 예정 물량을 따져보면 앞으로 2, 3년간은 과거 평균치를 회복하는 수준이다. 오히려 서울은 당분간 집이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에서 재건축·재개발로 사라질 주택이 6만 채가 넘는다. 고층 아파트 재건축의 경우 공급 효과가 거의 없고 택지지구 등을 통한 대형 공급도 불가능하다. 이주 수요가 쏟아져 나오는 만큼 전세난도 당분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아파트 재고 물량에서 향후 입주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대구 등 일부 지역에서는 공급 과잉에 따른 부작용 우려가 있다.” ―디벨로퍼가 왜 트렌드를 연구하게 됐나?
“과거 건설사(대우건설) 다닐 때는 초기 분양률이 60∼70%만 돼도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디벨로퍼는 잔금을 내고 입주를 해야 수익이 난다. 3년 뒤 입주할 시점에 실제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미래 사회 변화와 소비자 행태를 연구하게 됐다. 설계를 하다 보면 20%가량은 늘 불리한 상품이 나오는데 이를 어떻게 소비자에게 부각시킬지도 관심사였다. 예를 들어 예전엔 아파트 저층은 인기가 없어 할인 분양을 했다. 하지만 테라스하우스를 원하는 숨어 있는 수요를 찾아내 지금은 오히려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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