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 5년 뒤진 한국 교통기술… 中철도는 0.8년差 추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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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국가교통기술수준 분석해보니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국내 기술로 개발한 고속열차 ‘해무(HEMU-430X)’의 모습. 현재 시운전 중으로 아직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제공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국내 기술로 개발한 고속열차 ‘해무(HEMU-430X)’의 모습. 현재 시운전 중으로 아직 상용화되지는 못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제공
중국은 지난해 9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 150km 고속철 건설 사업을 따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국이 해외에서 처음 수주한 고속철 사업인 데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고속철 기술을 보유한 일본을 누르고 거둔 성과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메이드 인 차이나’ 고속철의 ‘쩌우추취(走出去·해외 진출)’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시진핑과 아베 신조의 대리전’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던 인도네시아 고속철 사업에서 고배를 마신 일본은 5년간 아시아 인프라 정비 사업에 11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선언하며 절치부심하고 있다.

고속철을 앞세운 중국의 ‘기술 굴기(굴起)’가 세계 건설·교통 인프라 시장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의 기술이 급성장하면서 한국과의 철도 기술 격차는 2년 새 절반으로 줄어 0.8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과의 기술 격차 역전은 시간문제라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 중국 철도 기술력, 한국 거의 따라잡아

20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입수한 국토교통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의 ‘2015년 국가교통기술수준분석 총괄보고서’에 따르면 철도, 도로, 건축, 플랜트, 수자원 등 국토 교통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 선진국과 한국의 격차는 평균 5.0년으로 조사됐다. 2년 전보다 0.4년 격차가 더 벌어졌다. 중국은 이 기간 세계 최고 기술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평균 7.2년에서 7.1년으로 좁혔다.

철도 분야의 경우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2년 전 1.6년에서 지난해 0.8년으로 절반이나 좁혀졌다. 사공명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미래전략센터장은 “중국은 매년 엄청난 규모의 고속철을 건설하고 있는데 이 경험이 쌓이며 기술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 관련 매체인 경제참고왕(經濟參考網)에 따르면 중국철로총공사가 올해 국내외 철도사업에 8000억 위안(약 144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공사 측은 지난해에도 8238억 위안을 철도 건설에 투자해 총 9531km를 건설했다. 이 중 34.7%인 3306km가 고속철이다. 이달 초엔 중국철도건설(CRCC)이 27억 달러(약 3조2670억 원) 규모의 세네갈∼말리 철도 건설 공사를 수주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다른 인프라 분야에서도 중국의 약진은 눈에 띈다. 건축, 도시, 시설물, 물류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중국과 한국의 기술 격차가 좁혀졌다. 항공 기술력은 오히려 중국이 한국을 0.6년 앞서 있다. 이 격차는 2013년 0.4년에서 갈수록 벌어지는 모양새다.

건설업계에서도 중국 기업은 맹활약을 하고 있다. 건설·엔지니어링 전문지(誌)인 ENR의 2014년 10대 건설사 중 중국 기업이 5곳이나 됐다. 2000년에는 10대 건설사 순위에 이름을 올린 중국 건설사는 1곳도 없었다. ‘중국 회사는 가격, 한국 회사는 기술력’이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다는 게 건설업계의 설명이다.

○ 수주 실적 초라한 한국, 기술력 자금력 영업력 동원해야

중국에 비해 세계 인프라 시장에서 한국의 실적은 초라한 편이다. 고속철의 경우 한국은 2010년 국내 기술로 고속철을 상용화했지만 해외 수주를 한 건도 따내지 못했다. 국내 기술로 상용화된 고속철도(KTX) ‘산천’은 국내용으로 전락했다. KTX의 뒤를 이을 차세대 고속열차로 기대를 모았던 ‘해무(HEMU-430X)’도 시운전만 하고 상용화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았던 건설 분야는 최근 저유가로 중동 발주처들의 재정이 악화돼 지난해 해외 수주 실적이 전년보다 30%가량 줄어들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국내 건설사들이 기술 개발 투자를 소홀히 하고 저가 수주 경쟁에만 집착하다 보니 해외 사업에서 적자가 커졌다”며 “장기적으로 고부가가치 기술을 개발해야 해외 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교통, 건설 등 인프라 부문에 대한 연구개발(R&D)은 다른 부문에 비해 미미한 편이다.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교통안전 분야 R&D 예산은 국가 R&D의 4.0%로 2011년(3.9%) 이후 비슷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경쟁력 있는 분야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선택과 집중’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관계자는 “기술 종류에 따라 한번 뒤처지면 따라잡기 힘들어지는 분야가 있다”며 “그런 분야들에 당장 예산을 투입해 집중적으로 기술력을 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자금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에는 저유가로 해외 발주처들의 재정이 어려워져 발주처들이 투자금을 안정적으로 댈 수 있는 기업들을 원하기 때문이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인프라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늘리고 한국수출입은행 등이 지원하는 금융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 인프라 사업을 다루는 국제기구에 진출해 시장 영향력을 키우는 노력도 필요하다. 조진철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시아 인프라 시장의 프로젝트를 직접 다루는 AIIB의 주요 직책에 한국 인재를 파견해 정보를 얻고 영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국가교통기술#철도#기술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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