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사외이사들 정-관피아 여전하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7일 03시 00분


전문성-자격기준 강화이후, 은행권 2014년과 비교해보니

‘금융, 경제, 경영, 회계 및 법률 등 관련 분야에서 충분한 실무경험이나 전문지식을 보유하였는지….’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도입한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명시된 사외이사의 자격기준이다. 회장과 행장이 갈등을 빚은 ‘KB 사태’ 당시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사외이사 선임 시 경험과 전문성을 따져볼 것을 요구했다.

이런 모범규준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사외이사들의 면면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16일 현재 차기 이사회 구성을 마무리한 금융지주 4개사(KB, 하나, 신한, NH농협)와 5개 시중은행(국민, 우리, 하나, 외환, 한국스탠다드차타드) 사외이사진의 경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55명 중 교수가 16명으로 가장 많고 금융인 13명, 관료 및 금감원 출신이 8명, 법조인 5명, 정치권 관련 이력 보유자 4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교수 출신 사외이사의 수는 이전보다 다소 줄었지만 정치권 이력을 가진 인사나 정부 관료 및 금감원 출신이 여전히 은행 사외이사진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 금융인 출신 ‘약진’


은행 사외이사의 ‘단골손님’이던 교수 출신은 지난해 59명 중 20명(34%)이었는데 올해 55명 중 16명(29%)으로 감소했다. 그 자리를 금융회사, 금융연구원 등을 거친 금융인이 채웠다. 지난해 3월 말 9명(15%)이던 금융계 출신 사외이사는 올해 13명(24%)으로 늘어났다.

이는 금융사들이 경쟁사에 몸담았던 ‘적장(敵將)’들을 사외이사로 적극 영입한 결과로 보인다. KB금융은 최영휘 전 신한금융 사장과 유석렬 전 삼성카드 사장, 신한은행 이사회의장을 지낸 박재하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 부소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한다. 하나금융은 이진국 전 신한금융투자 부사장과 양원근 전 KB금융 부사장 등을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 선정했다.

이 밖에 ‘정통 한은맨’ 박철 전 한국은행 부총재, 송기진 전 광주은행장도 각각 신한금융과 외환은행 사외이사진에 합류했다.

○ 정치금융 인사, 관료 출신 아직 상당수

59명에서 55명으로 사외이사 총원이 줄어든 가운데서도 정치권 이력을 지닌 사외이사는 3명(5%)에서 4명(7%)으로 늘었다. 정부 관료 및 금감원 출신 사외이사는 12명(20%)에서 8명(16%)으로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다.

‘정치금융’ 인사는 본인 또는 배우자가 정치인이거나 대선 캠프 참여, 공천 신청, 집권 여당 산하 위원회 활동 등의 경력이 있는 인사들로 한정해 집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김주성 외환은행 사외이사는 대기업에서 부회장까지 지낸 경력을 고려해 기업인으로 분류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신규 사외이사 후보 4명 중 3명이 정치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한기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는 2012년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에 공천 신청을 했으며 홍일화 우먼앤피플 고문은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지냈다. 천혜숙 청주대 교수의 남편은 이승훈 청주시장(새누리당)이다.

국민은행의 사외이사로 추천된 김우찬 법무법인 한신 대표변호사도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클린공천지원단’으로 활동했으며 현재도 새누리당 추천으로 국회 개인정보보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지배구조 모범규준의 효과가 제한적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군이 일부 다양화되긴 했으나 금융회사들이 여전히 정부나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며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은행들은 위에서 눌러 내리면 별다른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장윤정 yunjung@donga.com·신민기·백연상 기자
#은행#사외이사#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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