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사업, GDP보다 文化 알아야 성공”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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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무협 주최 ‘서비스산업 해외진출 세미나’… 현장 사례 들어보니

“아직 애를 낳은 지 얼마 안 됐잖아요. 딸의 머리를 감기면 안 됩니다.”

산후조리원 프랜차이즈 ‘동그라미산후조리원’은 한국의 ‘산후조리’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 2011년 지린(吉林) 성 창춘(長春)에 중국 1호점을 열었다. 결혼 적령기를 맞은 ‘바링허우(八零後) 세대(1980년대에 태어난 중국의 신세대)’를 공략하며 최고급 서비스를 내세워 호응이 높았지만 문화적 차이로 고객과 충돌할 때가 많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어렵게 출산을 마친 32세의 산모에게 직원이 머리를 감겨주려고 했지만 산모의 부모가 막아섰다. “중국 전통에는 출산 후 2주가 지나기 전에 산모에게 찬 것이 닿으면 ‘풍(風)’이 들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산모의 머리는 출산 과정에서 땀으로 많이 젖은 상태. 직원이 부모를 상대로 일주일이나 설득을 한 후에야 겨우 산모의 머리를 감기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 병원을 찾는 산모 10명 중 4명은 입원 기간 내내 머리를 안 감는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산모가 찬 것을 접하면 안 된다는 풍습이 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다.

“서비스기업, 해외서 살길 찾으려면” 11일 동아일보와 한국무역협회가 공동 주최한 ‘서비스기업 해외진출
 성공사례 세미나’가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코엑스에서 열렸다. 행사장에는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 관계자 200여 명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서비스기업, 해외서 살길 찾으려면” 11일 동아일보와 한국무역협회가 공동 주최한 ‘서비스기업 해외진출 성공사례 세미나’가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코엑스에서 열렸다. 행사장에는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기업 관계자 200여 명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동아일보와 한국무역협회가 공동 주최한 ‘서비스산업 해외진출 성공사례 세미나’에 참석한 기업들은 저마다 진출한 나라와 업종들이 달랐지만, “현지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사업적으로는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해도 막상 일을 시작해 보면 새로운 상황이 계속 나타난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영상산업이 성장할 것으로 보고 현지에 진출한 한비엣미디어의 양선욱 대표도 그중 한 사람이다.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문화·미디어 사업에 외국인의 진출을 절대 허용하지 않고 있다. 양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현지인 파트너를 만나 그의 명의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제도적 장벽은 시작일 뿐이었다. 진정한 어려움은 문화 차이에서 왔다. 모든 일에 커미션(뇌물)을 주고받는 관행 때문에 이에 따르지 않으면 시장에 들어가기 힘들었다. 양 대표는 “TV 광고에 입찰하는데, 전체 비용의 40%를 커미션으로 요구받은 적도 있다”며 “한 명만 받는 것이 아니라 일이 진행되는 단계마다 뇌물을 요구해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덧붙여 그는 “뇌물을 받았으면 받았다고 그들이 영수증을 써주는 것도 황당했던 경험”이라고 밝혔다.

또 한국인 직원과 베트남인 직원 사이에 불화도 있었다. 현지인들이 실수를 저질러 한국인 스태프가 지적하면, ‘잘못했다’는 말은 안 하고 그저 웃거나 미소만 짓는 것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미안하다는 말 대신 미소로 실수를 인정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양 대표는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팔짱을 끼는 게 가장 공손한 자세인가 하면, 혼이 나거나 가족이 아프면 아예 출근을 안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몽골·러시아 등에서 해외 환자를 유치하고 있는 대전선병원은 몽골 환자에 대한 수술 준비를 다 해놓고도 수술을 연기한 적이 있다.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려던 환자였다. 통증이 심하다는 얘기를 듣고 환자가 입국한 다음 날 수술을 하려고 직원들이 만반의 준비를 갖춰놨지만, 환자가 수술을 거부하는 바람에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묻자 “몽골에서는 화요일에 수술 등 안 좋은 일을 하면 불길하다고 믿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병원 김창식 팀장은 “불교 신자가 많은 몽골인들은 스님이 정해준 날짜나 요일에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사무지원 서비스 기업 잉크천국은 대학을 졸업하고 조건이 완벽하다고 생각한 구직자가 최종 면접 과정에서 회사에 ‘이슬람 율법에 따라 하루 3번 기도와 기도실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해 당황한 경험이 있다. 잉크천국은 이 직원에게 기도실을 만들어주기로 하고 뽑았다.

김정덕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해외 진출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어려움은 현지 파트너와 인력 관리의 문제 그리고 법규 정보를 잘 모른다는 것”이라며 “사례들을 연구하다보면 현지에서 사업의 성패는 그 나라의 국민소득 등 수치적인 것보다도 문화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해외에서 사업을 하다 보면 사기를 당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일단 현지인들을 믿고 대비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조언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해외사업#서비스산업#해외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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