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 포함해 모든 것을 이사회 결정에 맡기겠다”
“李행장 노조원에 뒤통수 맞아”… 비디오 돌려보며 확인 결과
고의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고객들까지 ‘집안싸움’ 걱정
이건호 국민은행장(사진)이 주전산기 교체 문제로 KB금융의 내분을 일으킨 것과 관련해 자신의 거취를 이사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의 갈등이 고조되며 조직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이사회에 거취에 대한 재신임을 묻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이사회 사퇴 결정땐 ‘수용’ 밝혀
이 행장은 1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은행 본사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거취를 포함한 모든 것을 이사회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조직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스스로 사퇴를 거론할 수는 없지만 이사회가 자신의 사퇴를 결정한다면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행장은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기 위한) 이사회 일정을 이른 시일 내에 잡아 결론을 내겠다”며 “이사회에서 물러나라고 하면 사퇴할 용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주전산기 교체 문제는 ‘직’을 걸고서라도 매듭짓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 당분간 국민은행과 지주사의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행장은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한 내부 감사보고서를 보는 순간 은행장의 직을 걸고 이를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은행장으로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행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임 회장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밝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경영진 갈등에 실적도 곤두박질
이 행장이 자신의 거취 문제까지 거론한 것은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의 경징계 결정 이후 국민은행의 내홍이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화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임 회장과 이 행장은 지난달 22일 조직 화합을 위해 함께 떠난 템플스테이에서 의전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이어 이 행장이 주전산기 교체와 관련해 임 회장 측 인사로 분류되는 간부 3명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국민은행 임직원들은 이 행장의 고집스러운 행보가 이어지며 회사 경영에도 안 좋은 영향이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한 부장급 관계자는 “은행장은 은행의 최고경영자이며 수익을 내는 데 집중해야 하는 위치”라며 “수익을 끌어올리려면 지주사와의 협력이 중요한데 지주사와 상의 없이 임직원을 고발하고 알력을 빚는 모습을 보이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한 간부급 직원은 “은행장이 지주사와 왜 싸우는지 궁금해하는 고객이 많아 영업점 직원들이 대답을 둘러대느라 곤혹스러워한다”고 하소연했다.
국민은행 노사 관계도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달 25일에는 이 행장이 출근 저지 투쟁을 하는 노조와 물리적인 충돌을 빚기도 했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 행장이 노조원 한 명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소문이 돌아 당시 현장을 촬영한 비디오를 확인해 보니 실제로 신체적 접촉이 있었다”며 “다만 노조원이 고의로 가격을 한 게 아닌 것으로 확인돼 묻어두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금융권에서는 이 행장이 주전산기 교체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생각에 매몰돼 조직원들을 보살피는 데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 행장이 조직생활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조직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KB금융 경영진의 갈등이 깊어지는 사이 국민은행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다. 국민은행은 올해 상반기 5462억 원의 순이익을 내 신한은행(8421억 원) 기업은행(6195억 원) 하나은행(5568억 원) 등 경쟁 은행들에 비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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