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발전과 욕망의 시대… 잘 사는 게 무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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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약 성경은 삼국신화 같은데 이유는 인간이 짐승 같기 때문이다. 지금도 인간은 짐승 같지만 옛날이야기에서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채로 드러나 있다. ―‘백행을 쓰고 싶다’(박솔뫼 지음·문학과지성사·2013년) 》

머리를 깎는 날이면 마당에 의자를 내놓고 아버지는 가위를 숫돌에 갈았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보자기를 씌우고 싹둑싹둑 단발로 머리를 매만졌다. 학교에 가면 모든 계집아이가 엄마표 단발머리를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짜장면 한 그릇이 어디서나 500원 남짓이던 그 시절로부터 35년간 대한민국은 발전했다. 시골 아이였던 여인은 이제 대도시 아파트에 살며 5만 원짜리 두피 스크럽을 받는다. 커트 서비스는 거기에 덤으로 얹힌다.

그 이전의 대한민국은 어땠나. 어쩌면 머리를 깎아주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나 미군정을 살았을 게고, 전쟁을 경험했을 게다. 우리에게 닥치는 게 자본주의인지 뭔지도 모르는 채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시대를 거치며 혈족과 마을공동체에 기대 생존을 유지해야만 했던 시절을 겪었을 터이다.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지난 발전의 수레바퀴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급박한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고 어느새 전 세계에서 가장 어질어질한 욕망의 경제 속으로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 한 인간의 일대기 속에서 그런 상전벽해가 이뤄짐을 나는 ‘아득하다’고 쓰고, 박솔뫼 작가는 “백행을 쓰고 싶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로 짚는다.

그만하고 떠나는 사람들의 우울하고 슬프고 ‘막막한 두려움’들로 빽빽한 ‘백행을 쓰고 싶다’는 시종일관 뻑뻑하게 읽힌다. ‘신에게서 버림받은 세계의 서사시’(루카치)인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짐승 같은 인간들의 거대한 욕망기계인 도시에서 거듭거듭 죽음 속으로 버림받는다. 발전과 욕망 속에서 모든 것이 이처럼 ‘단편적’인 듯 보이는 어수선한 시대, ‘잘살아 보세’를 가지런하게 그만두는 방법, 과연 무얼까?

박유안·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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