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한 통신사 대신 영세 판매업자만 망할 판”

  • 동아일보

13일부터 영업정지 앞둔 현장가보니

영업정지 시행을 사흘 앞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휴대전화 대리점 앞 인도에 ‘영업정지 혜택 받아가세요 서두르세요’라는 홍보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방통위가 정한 보조금 제한액은 27만 원이지만 이 대리점은 최대 70만 원의 보조금 지급을 약속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영업정지 시행을 사흘 앞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휴대전화 대리점 앞 인도에 ‘영업정지 혜택 받아가세요 서두르세요’라는 홍보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방통위가 정한 보조금 제한액은 27만 원이지만 이 대리점은 최대 70만 원의 보조금 지급을 약속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영업정지 전에 무조건 바꿔야 합니다. 평소보다 2배 이상 보조금 지원해 드려요.”

이동통신사 역대 최장기간 영업정지 시행을 3일 앞둔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 직원들은 가게를 찾는 손님들마다 “영업정지 직전이라 보조금이 쏟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13일부터 이동통신사들은 각각 45일간 신규 가입과 기기 변경 등을 할 수 없게 된다. KT와 LG유플러스는 13일부터, SK텔레콤은 4월 5일부터 영업정지가 이뤄진다. 직원들은 “최대 80만 원 보조금 외에도 부가서비스 가입비와 유심비 무료 등 평소보다 더 많은 혜택이 있다”고 했다.

가게 안팎에 ‘영업정지 혜택 받아가세요’ ‘영업정지 전 마지막 기회’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일부는 속칭 ‘핫 스팟 타임’에 연락을 할 고객 명부를 작성하기도 했다. 핫 스팟 타임은 특정 일, 특정 시간에 각 직영점과 대리점에 수십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공지가 내려지는 것을 말한다. 한 고객 명부를 보니 이미 20여 명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역대 최장기간 영업정지 명령을 받았지만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들의 불법 보조금 경쟁은 그칠 줄 몰랐다. 영업정지 전까지 한 명의 가입자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해 안간힘이었다.

휴대전화 판매업자 이찬권 씨(32)는 “평소 10만∼20만 원 정도 지원되던 최신 전화기에 주말부터 45만∼60만 원의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며 “어차피 받을 벌이 정해졌으니 무서울 게 없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판매업자들은 영업정지 후 매출이 급격히 떨어질 것을 걱정하는 모습도 역력했다. 이들은 미래창조과학부가 ‘회초리’를 잘못 휘두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작 잘못을 한 이동통신사들은 손해 볼 게 없고 영세 판매업자들만 망하게 하는 이상한 제재라는 것이다.

휴대전화 판매업자 윤진영 씨(43)는 “집주인이 죄를 지었는데 죗값은 세입자들이 받는 셈”이라며 “통신사로선 마케팅 비용을 들이지 않고 현재의 가입자 수준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유급휴가를 받은 셈이고 휴가기간 동안 영세 판매점들만 죽어날 게 뻔하다”고 했다.

현대증권은 이날 “영업정지 처분으로 가입자 뺏기 경쟁이 완화돼 통신사의 이익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매출 감소에 따른 피해보다 마케팅 비용의 절감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은 2700억 원, KT는 1730억 원, LG유플러스는 1230억 원의 이익 증가를 예상했다. 지난해 이동통신 3사가 지출한 마케팅 비용은 7조9452억 원이다.

이날 이동통신 3사는 저마다 ‘영업정지 발표 후에도 경쟁사들이 보조금 무차별 투하를 멈추지 않는다’는 내용의 자료를 내며 서로를 손가락질하기 바빴다. 하지만 기자가 소비자를 가장해 이동통신 3사의 판매점을 돌아보니 이동통신 3사의 행태는 ‘도토리 키 재기’였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통신사#보조금 경쟁#영업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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