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머릿속의 생각 re;MOVE”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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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대행사 제일기획 사람들에게 배우는 ‘크리에이티브’해지는 법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제일기획 본사에 제작본부 임직원의 얼굴사진을 그린 이젤들이 들어서 있다. 제작본부 사람들은 이 사진에 ‘없애야 할 생각들’을 써넣었다. 위 큰 사진은 행사에 참가한 한 직원의 얼굴 옆모습. 제일기획 제공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제일기획 본사에 제작본부 임직원의 얼굴사진을 그린 이젤들이 들어서 있다. 제작본부 사람들은 이 사진에 ‘없애야 할 생각들’을 써넣었다. 위 큰 사진은 행사에 참가한 한 직원의 얼굴 옆모습. 제일기획 제공
머릿속에 한 번 박힌 생각만큼 빼내기 어려운 것은 없다.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사람들에겐 고정관념이 가장 두렵다.

그래서 국내에서 가장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회사 중 하나인 제일기획은 올해 송년 캠페인의 주제를 ‘없애자, 버리자, 지우자, 잊자’로 정했다. 머릿속을 가득 메웠던 고민과 생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자는 의미다.

최근 제일기획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본사 로비 1층을 제작본부 전 직원 207명의 얼굴 사진이 담긴 이젤들로 가득 채웠다. 제작본부는 창의적인 카피라이터, 디자이너 등이 일하는 현장 조직이다. 이 행사는 ‘없애다’ 혹은 ‘옮겨가다’는 뜻을 모두 담고 있는 ‘re;MOVE’(리무브)라는 제목이 붙었다.

검은색 배경의 사진 위에는 ‘○○○님이 진정 없애야 할 것을 적어주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펜이 달려 있다. 특정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돌아가며 적는 롤링페이퍼처럼 자기 자신 또는 동료들이 생각하기에 ‘더 창의적이기 위해 없애야 할 생각’을 적는 방식이다.

유정근 부사장부터 신입사원까지, 제작본부 전원이 참여한 이번 캠페인에서는 서로를 위한 다양한 조언이 쏟아졌다. 특히 유 부사장과 오혜원 상무, 웨인 초이 상무(ECD) 등 임원들이 먼저 re;MOVE해야 할 것들을 당당히 공개했다. 오 상무는 내일 아침 스케줄을 잊고 싶다고 했고, 웨인 초이 상무는 ‘tyranny of politeness(지나친 예의)’라고 적었다. 예의만 갖추기보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솔직하고 과감한 의견을 내자는 뜻이다. 은명표 제일기획 프로는 “임원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임원들에게 ‘내년에는 머릿속에서 이것만은 버려주세요’라고 용감하게 주문했다. 유 부사장의 사진 속에는 ‘리뷰’(광고 시안을 함께 보고 평가하는 과정) ‘다이어트’ ‘다크 서클’ 등의 단어가 가득 했다. 다른 임원들의 사진에도 ‘저녁 먹고 (일)하자’ ‘다시 준비해’ ‘내일까지’ 등 강도 높은 업무를 지시하는 말들을 잊어 달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주문이 이어졌다.

젊고 톡톡 튀는 직원끼리 서로 써준 내용도 재치가 넘쳤다. ‘어젯밤 그놈’ ‘오픽’(OPIc·영어 말하기 시험의 한 종류) ‘쌍꺼풀 수술 전 사진’ ‘전 남친 페이스북’ ‘서울 여자’ ‘이제 나이 서른’ ‘소맥 폭탄주’ ‘카카오톡 단체방’ ‘깔창’ 등부터 ‘야근’ ‘회의하자’ ‘예산 제한’ ‘데드라인’ 등 업무 관련 내용도 많았다.

장원준 프로는 “동료들이 써준 조언을 보니 평소 나도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됐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해오던 행동과 생각들이 나를 발전시키는 데 방해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제일기획이 이번 캠페인을 통해 직원들이 가장 잊어주길 바라는 것은 ‘국내 1등 광고대행사’라는 타이틀이다. 제일기획은 5월 창립 40주년을 맞아 ‘아이디어로 세상을 움직인다(Ideas that Move)’라는 새 슬로건을 선포하고 단순한 광고회사를 넘어 ‘아이디어 컴퍼니’로 발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이번 캠페인 역시 이 슬로건과 같은 취지로, 버릴 것은 버리고 없애야 할 것은 없애 제2의 도약을 하자는 것이다.

유 부사장은 “자만과 권위를 갖게 되는 순간 익숙함에 안주하게 되고 우리 회사의 힘인 세상을 움직이는 아이디어는 더이상 나올 수 없다”며 “독특한 방식으로 오래된 생각과의 이별식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제일기획은 캠페인 마지막 날인 11일 밤 임직원들이 모두 모여 우수 ‘제거 대상’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행사를 진행한 이채훈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는 “고전적인 모나리자에서 긴 생머리를 re;MOVE하면 상큼한 단발머리의 현대적 여인이 탄생한다. 나 역시 오늘부터 나, 회사, 고객에 대한 자세를 re;MOVE하겠다”고 발표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제일기획 사람들은 이렇게 창의성을 벼리고 있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광고대행사#제일기획#크리에이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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