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예산회계분석 소프트웨어 업체를 차린 강모 씨(57)는 한때 70억 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지만 자금 사정이 나빠져 2011년 폐업했다. 다시 창업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기술보증기금의 지급보증을 받아 은행에서 빌렸던 20억 원의 빚과 신용불량자라는 딱지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지난달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강 씨는 “당장 신용카드도 못 만드는데 어떻게 재창업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창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장려하는 가운데 ‘창업자 연대보증’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창조경제연구회가 24일 개최한 공개 포럼에서도 창업자 연대보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방향 아래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연대보증은 중소기업이 자금의 95%를 대출에 의지하는 현실에 따라 필요악으로 인식돼왔다. 최근 정부가 ‘금융연좌제’라는 비판을 받았던 제3자 연대보증을 폐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경영자에 대한 연대보증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실제 경영자이면서 대표이사 또는 최대주주이거나, 배우자와 합친 지분이 30% 이상인 1명은 반드시 보증을 서야 한다.
벤처업계에서는 창업자 연대보증을 폐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로 한번 실패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재도전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점을 꼽는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벤처기업이 평균 2.8회의 실패를 겪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창업만큼 중요한 것이 실패와 재기”라고 강조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청년들의 창업의지를 꺾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이사장이 대학생 100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신용불량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창업할 의사가 있는지’ 묻자 10.5%만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신용불량 위험이 사라졌을 때를 가정하자 응답률이 69.4%로 높아졌다.
벤처업계는 기보, 신용보증기금 등 정부기관의 보증을 통해 받은 대출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심사해 지급한 대출에 한해서라도 창업자 연대보증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은행권에서 남아 있는 연대보증 대출은 9만9000건이다. 반면 기보와 신보의 연대보증 대출은 18만5000건에 달한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창업자 연대보증 폐지에 대해 전반적으로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우선 금융회사가 기업의 사업성을 정확하게 심사할 수 있어야 하고, 보증기관은 부실이 나더라도 다른 기업들에 대한 보증이 위축되지 않도록 재원을 확보해야 하고, 기업들은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연대보증을 없앤 뒤 우려되는 모럴해저드를 막기 위한 방안도 논의됐다. 이 이사장은 연대보증을 면제하되 횡령, 배임 등을 저지른 창업자에게는 대출액의 3배를 물리는 ‘징벌적 배상제’ 도입을 제안했다. 위험 부담에 대한 비용을 가산 금리나 주식으로 내는 방안도 제시됐다.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창업자 연대보증을 없애면서도 모럴해저드를 막는 내용을 담은 기술신용보증기금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 때 발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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