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만 바라보던 고급브랜드, 새 유통망 찾아 ‘脫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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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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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는 온라인으로, 디자이너는 홈쇼핑으로, 화장품은 드러그스토어로

백화점서 외출 나온 고급 화장품 브랜드 일본 화장품 브랜드 SK-II가 지난달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문을 연 장기 팝업스토어. SK-II 제공
백화점서 외출 나온 고급 화장품 브랜드 일본 화장품 브랜드 SK-II가 지난달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문을 연 장기 팝업스토어. SK-II 제공
《 권순건 현대백화점 바이어는 지난해 정기적으로 집에 배달되는 상자를 보고 흥미를 느꼈다. 아내 앞으로 온 상자에는 선크림을 비롯해 각종 화장품이 들어 있었다. 아내는 회원으로 가입하면 계절에 맞는 화장품을 집으로 보내주는 정기구독(서브스크립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다. 전국 식품 명인들의 제품을 발굴해서 판매하는 게 업무인 권 바이어는 ‘이거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좋은 제품을 발굴해도 백화점 매장의 공간적인 제약이나 유통상 어려움으로 팔지 못할 때가 많았다”며 “화장품처럼 식품도 계절마다 회원들의 집에 보내주면 어떨까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
봄 식재료 패키지 현대백화점은 백화점 업계 최초로 ‘명인명촌’ 정기구독 서비스를 도입해 계절마다 제철 식재료를 집으로 보내준다. 현대백화점 제공
봄 식재료 패키지 현대백화점은 백화점 업계 최초로 ‘명인명촌’ 정기구독 서비스를 도입해 계절마다 제철 식재료를 집으로 보내준다. 현대백화점 제공
권 바이어의 아이디어로 현대백화점은 이달부터 ‘명인명촌’ 정기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상품 대신 일종의 회원권을 파는 개념이다. 연회비로 40만 원을 내면 봄(4월), 여름(7월), 가을(10월), 겨울(12월) 등 연 4회 제철 채소나 미역, 간장 등을 집으로 보내 준다. 한 꾸러미에는 15만 원어치의 제품이 들어 있어 소비자도 이득이다.

백화점 공간을 거치지 않고 산지의 제품을 조합해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일종의 실험이다. 현대백화점은 명인명촌 정기구독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으면 연간 배송 횟수를 늘리고 두릅, 당근과 같은 채소로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현대백화점처럼 국내 백화점들이 최근 새로운 유통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새로운 유통망이 끊임없이 생겨나며 백화점 중심의 유통 체계가 흔들리자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롯데백화점은 백화점 상품만 파는 온라인몰인 ‘엘롯데’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백화점을 찾을 시간이 없는 바쁜 직장인들이 주요 타깃이다. 1인당 1회 평균 구매금액이 15만 원으로 일반 인터넷쇼핑몰의 두 배다. 소비 침체로 백화점 매출 성장률은 정체됐지만 엘롯데는 지난해 오픈 이후 회원이 매일 4000명씩 늘며 매출이 올라가고 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600억 원이다.

전통적으로 백화점만 바라보던 고급 브랜드들도 백화점을 벗어나 온라인과 가두매장으로 나서고 있다.

프랑스 화장품 ‘부르조아’와 미국 화장품 ‘스틸라’는 다음 달 드러그스토어로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일본 화장품 브랜드인 SK-ll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장기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카페 공간을 7주 동안 빌려 젊은 고객과 만나겠다는 취지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의 주요 유통망이 가두매장과 인터넷으로 변하면서 수입 화장품들도 백화점에서 벗어날 고민을 한다”며 “백화점에서 진행하던 프로모션이나 홍보행사도 줄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 브랜드들도 탈(脫)백화점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국내 디자이너들 가운데 홈쇼핑 업체와 손잡고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잦아졌다.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백화점을 주요 유통망으로 활용하던 해외 유명 브랜드들은 최근 적극적으로 인터넷을 공략하고 있다. ‘버버리’는 국내 백화점에서 특정 상품이 품절돼도 고객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 있도록 글로벌 유통망을 정비했다. 인터넷으로 트렌치코트를 맞춤 제작할 수 있을 정도다. ‘마크 제이콥스’ ‘마르니’ 등도 백화점보다 6개월 빨리 컬렉션 의상을 인터넷에서 주문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마련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백화점#패키지#정기구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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