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먹여살릴 신기술 ‘농업 R&D’에 답있다

  • 동아일보

■ 농진청 주도 연구 10건 ‘2012 우수성과’ 선정

지난달 15일 세계적 과학학술지 ‘네이처’에 ‘돼지 유전자 해독을 통한 돼지의 집단통계학과 진화 해석 가능’이라는 긴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처음으로 ‘돼지 유전체 지도’를 완성한 논문이었다. 특히 이 논문은 사람과 돼지의 장기와 조직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95% 정도 비슷하다는 점을 입증해 장기이식용 돼지 연구가 더욱 활발해질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덴마크 이탈리아 네덜란드 일본 중국 등 9개국이 ‘돼지 유전체 해독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으로 진행했다. 한국의 ‘대표 선수’는 농촌진흥청 축산과학원 이경태 박사였다. 이 박사는 “이번에 연구한 유전체 지도를 바탕으로 우리 재래돼지의 유전체 지도를 완성한 다음 품종개량 연구도 함께 진행할 것”이라며 “난치병을 이기는 해법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인류 미래 책임질 농업신기술 잇달아 개발

친환경 비료 청풍보라 대표적 녹비작물로 화학 비료를 대체하는 ‘친환경 비료’로 쓰이는 청풍보라의
 재배 모습. 국립식량과학원 김민태 박사팀은 국내 최초로 청풍보라 종자 생산 기술을 개발해 정부 연구개발(R&D) 
우수성과로 인정받았다. 농촌진흥청 제공
친환경 비료 청풍보라 대표적 녹비작물로 화학 비료를 대체하는 ‘친환경 비료’로 쓰이는 청풍보라의 재배 모습. 국립식량과학원 김민태 박사팀은 국내 최초로 청풍보라 종자 생산 기술을 개발해 정부 연구개발(R&D) 우수성과로 인정받았다. 농촌진흥청 제공
이번 연구는 지난달 28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주관한 ‘2012 정부 연구개발(R&D) 우수성과’에 선정됐다. 정부 R&D 우수성과란 국가가 정부와 대학, 정부출연기관, 민간연구소 등에 예산을 지원한 프로젝트 중 성과가 우수한 프로젝트에 대해 시상하는 제도다.

과기위가 과학기술 수준 향상 여부, 산업경쟁력 제고에 기여한 정도 등 기술의 우수성과 파급효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한다. 분야는 △기계·소재 △생명·해양 △에너지·환경 △정보·전자 △기초·인프라 등 5개이며 돼지 유전체 연구는 기초·인프라 분야에서 선정됐다.

생명·해양 분야 우수성과로 선정된 ‘곤충 고기능성 항생물질 분리 기술’도 돼지 유전체 지도 못지않은 업적으로 평가 받는다. 국립농업과학원 황재삼 박사팀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애기뿔소똥구리’라는 곤충이 면역반응으로 분비하는 항생물질을 추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자신이 낳은 애벌레가 성충이 될 때까지 보호하기 위해 항생물질을 분비하는 습성을 이용한 기술이다. 특히 이 물질은 인체에 유해한 세균은 물론이고 급성 위막성 대장염을 없애는 데 상당한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 항암제, 기능성 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립식량과학원 김민태 박사팀이 국내 최초로 개발한 청풍보라 종자 생산 기술도 에너지·환경 분야의 우수성과에 선정됐다. 청풍보라는 잎에 영양분이 풍부해 비료 대신 쓰이는 대표적인 녹비작물(綠肥作物)이다. 이번에 개발한 종자는 수입 종자보다 질소 생산량은 6.2%, 월동률은 4.9% 정도 높아 녹비작물로 안성맞춤이다. 전국 어디서나 재배가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농진청 관계자는 “화학비료 대체효과 등 경제적 가치가 총 4000억 원에 이르는 기술”이라며 “종자 수입 대체 효과만 해도 연간 수백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 “공공부문이 농업 R&D 이끌어야”

올해 정부가 선정한 66개 우수성과 가운데 이와 같이 농진청이 국가예산을 투입해 개발한 기술은 10건이나 선정됐다. 정부기관 중에는 교육과학기술부(18건)에 이어 두 번째. 농진청은 2010년에 11건, 지난해에는 10건이 선정된 바 있다. 농진청 관계자는 “유사한 과제를 과감히 통폐합하고 농업과 기타 산업의 융·복합, 기후변화 연구, 녹색성장 등 장차 미래 한국을 먹여 살릴 분야에 연구 역량을 집중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가 R&D 전체 예산 14조9000억 원 가운데 농진청에 투입된 예산은 3.4%(5028억 원)로 크지 않다. 하지만 교육과학기술부(4조6981억 원), 지식경제부(4조5161억 원·7건), 방위사업청(2조8억 원·4건) 등 기타 부처에 비하면 예산 투입 대비 성과가 높은 편이다.

농업 R&D는 연구대상이 생물체이다 보니 성과가 나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어간다. 벼의 경우 신품종을 육성하려면 최대 18년이나 걸릴 정도다. 기후, 토양 등 자연환경요소에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연구를 지속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식량위기 문제 해결을 위해 힘쓰고 있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나 세계은행(WB) 등 국제기구들은 국가나 공공부문이 직접 농업 R&D 부문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선진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부문이 농업 R&D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프랑스 등 농업선진국들은 국가가 직접 예산을 투입해 농업 R&D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특히 농업 R&D 투자는 비농업부문 등 국가 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도 높은 편이다. 권오상 서울대 교수(농경제학)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07년 국내 농업 R&D 분야에 투자된 7700억 원이 국내총생산(GDP)에 미친 영향은 총 2조2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진모 농진청 연구정책과장은 “농업 R&D 투자 비율이 높은 농업선진국들은 곡물자급률도 높은 편”이라며 “농업 R&D부문의 투자 확대는 식량 문제와 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R&D#네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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