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률 높인다며… 겉-속 다른 ‘꼼수 펀드’

  • 동아일보

최근 직장인 김모 씨(32)는 자신이 가입한 중소형주 펀드의 운용보고서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대형주로 커나갈 중소형주를 똑똑하게 골라 담겠다던 이 펀드에 주가가 130만 원을 넘는 ‘황제주’ 삼성전자가 가장 많이 담겨 있었다. 김 씨는 “대형주 위주로 투자하는 펀드는 이미 보유하고 있어서 분산투자 차원에서 중소형주 펀드에 가입했다”며 “당초 원칙과 다르게 운용하면 펀드 분산투자의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상당수 펀드가 수익률을 높인다면서 펀드 설립 당시 운용철학을 무시하는 기형적인 운용행태를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의 허리를 책임질 저평가 우량주 투자를 표방하던 ‘가치주·중소형주 펀드’들이 130만 원짜리 삼성전자 편입에 매달리고, 매력적인 글로벌 투자섹터에 골고루 자산을 배분하겠다던 미래에셋 인사이트 펀드가 미국 주식에 ‘다걸기(올인)’하고 있다. 이름은 그대로인데, 실제 펀드 성격은 완전히 바뀌어 투자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 너도 나도 ‘삼성전자’ 담기


국내 주요 중소형주·가치주 펀드들의 상위 편입종목에는 올 들어 ‘나 홀로 독주’를 계속하는 삼성전자가 어김없이 들어 있다. 19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알리안츠자산운용의 ‘알리안츠기업가치향상장기증권’ 펀드는 올 1월 말 현재 삼성전자 비중이 15.85%에 이른다. 동부자산운용의 ‘동부진주찾기증권투자신탁’ 펀드도 삼성전자 비중이 14.46%로 가장 많다. 다른 펀드들도 비중은 다소 작더라도 상위 종목에 삼성전자를 올려두고 있다. 펀드 운용의 안전을 고려해 삼성전자를 5% 미만으로 보유하던 데서 상당히 벗어난 투자 행태다.

이 같은 삼성전자 쏠림현상에 대해 대부분의 중소형주 펀드매니저들은 “운용철학도 중요하지만 증시에서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삼성전자 주식을 편입하지 않고는 코스피 수익률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며 수익률을 높이려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라고 해명한다. 한술 더 떠 삼성전자도 가치주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중형주, 대형주를 떠나 가격이 가치에 비해 저렴하다면 가치주로 볼 수 있다는 논리다.

○ 인사이트 펀드는 중국 대신 미국


중소형주·가치주 펀드들이 삼성전자로 길을 틀었다면 한때 이머징마켓(신흥시장) 투자를 외치던 미래에셋 인사이트 펀드는 미국 등 선진국 증시에 다걸기했다.

2007년 중국 투자 붐을 일으키며 출범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쪽박 펀드’의 대명사가 된 인사이트 펀드는 연초 이후 수익률이 10%를 넘어섰다. 중국 브라질 등 이머징마켓에서 선진국으로 방향을 튼 결과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중국(홍콩)의 비중은 계속 줄어 10.92%까지 떨어진 반면 미국(32.94%) 한국(23.48%) 브라질(7.87%) 영국(5.42%)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상위 종목에는 미국의 황제주 애플(6.38%)과 구글(2.67%), 세계적인 시계제조업체 스와치그룹(2.61%), 스타벅스(2.35%)가 담겨 있다. 안선영 미래에셋자산운용 본부장은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꾸준히 이익이 성장하는 기업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며 “자연스레 혁신을 주도하는 미국의 정보기술(IT)업체, 유럽의 럭셔리 업체를 편입해 선진국 비중이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름은 그대로 둔 채 펀드 구성을 완전히 바꾼 것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중소형주·가치주를 지향한다고 해놓고 삼성전자에 줄을 대고, 이머징마켓 투자의 대표임을 자임하던 펀드가 선진국 주식 투자에 나선 것은 당장의 흐름에 편승해 운용철학과 펀드 고유의 특성을 버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배성진 현대증권 연구원은 “시장 수익률을 따라가기 위해 삼성전자를 일부 편입할 수도 있겠지만 중소형주 펀드에서 삼성전자 같은 대형주가 중심이 되는 것은 문제”라며 “고유의 스타일을 압도할 정도라면 투자자들을 속이는 행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금융 펀드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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