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하이닉스반도체 사내이사 선임이 국내 주요 대기업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적정성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다.
하이닉스는 13일 경기 이천시 본사에서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최 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권오철 하이닉스 사장은 “표결 결과 의결권 주식에 대한 과반수 찬성을 받았다”고 밝혔다. 총 발행 주식의 67.8%가 출석해 70.94%가 찬성했다. 하지만 9.15%의 지분을 보유한 하이닉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 2명이 최 회장의 이사 선임에 반발해 사퇴한 데 이어 일부 법조인이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 이사장을 상대로 집단소송 추진을 예고하는 등 후폭풍이 강하게 일고 있다.
○ 최 회장 이사 선임에 의결위원 사퇴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지홍민 임시위원장(이화여대 교수)과 김우찬 위원(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연구원 교수)은 국민연금이 최 회장의 하이닉스 이사 선임에 반대하지 않고 ‘중립 의견’을 내자 이날 사퇴했다. 지 위원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민연금이 최 회장의 이사 선임에 대해 중립 의견을 내기로 한 것에 절차상 문제는 없다”면서도 “국민연금 의결위가 설립됐을 때의 당초 목표를 실현하기 힘들다 보고 사퇴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이날 하이닉스 주총의 ‘최 회장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중립(섀도 보팅) 의견을 내놓기에 앞서 10일 산하 의결위에서 ‘찬반 진통’을 겪었다. 최 회장이 올 1월 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횡령한 후 전용한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기 때문이다. 찬성한 위원들은 “아직까지 최 회장의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만큼 ‘무죄추정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며 “하이닉스의 가치에도 최 회장의 이사 선임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반대 위원들은 “(하이닉스 이사회가 최 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므로)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가 있는 기업에 투자할 순 없다”고 맞섰다. 정부, 사용자대표, 근로자대표, 지역가입자가 각각 2명씩 추천한 8명과 연구기관 1명 등 모두 9명으로 이뤄진 위원회는 결국 찬성 3표, 기권 1표, 반대 3표(나머지 2명은 불참 또는 중립 의견)로 결론이 나지 않자 ‘중립’ 의견을 선택했다.
한편 SK그룹은 하이닉스 주주들에게 책임경영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 최 회장의 하이닉스 대표이사 선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SK 측은 “3조4000억 원의 인수대금 집행과 추후 필요한 막대한 규모의 투자를 하려면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에 그룹 회장이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밝혔다. 하이닉스는 14일 이사회를 열어 최 회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놓고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도마에
최태원 회장
국민연금은 그간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공언하며 지난해 12월 대한통운 임시주총에서 정관변경과 이사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주총 안건 찬성률이 90%가 넘는 등 소극적인 모습이 많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의 강력한 주주권 행사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법무법인 ‘율려’의 서정욱 변호사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국민연금이 3월 주총에서 의결권을 적절하게 행사하지 않으면 임채민 복지부 장관과 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에 대해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등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전 이사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위원회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장이므로 위원들 간에 의견이 갈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위원회가 중립 의견을 낸 것 자체가 상당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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