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눈-비늘까지 돋보기 검사… “정성을 팔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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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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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점 설 선물 ‘진정성 마케팅’

이제왕 현대백화점 바이어가 9일 포장 협력업체를 방문해 죽방멸치 선물세트에 담긴 멸치의 길이가 최상품 규격인 7cm에 맞는지 점검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제공
이제왕 현대백화점 바이어가 9일 포장 협력업체를 방문해 죽방멸치 선물세트에 담긴 멸치의 길이가 최상품 규격인 7cm에 맞는지 점검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제공
9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 건식품포장업체인 숭보식품.

위생복과 마스크로 ‘중무장’한 직원 8명이 현대백화점에 설 선물용으로 납품할 죽방멸치를 포장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경남 사천시 삼천포와 남해도 사이에서 잡은 이 죽방멸치는 600g당 50만 원, 한 마리에 1040원꼴에 팔리는 고급상품이다.

○ 첨단제조공정 못지않은 포장 작업


직원들은 작업대 위에 설치된 대형 돋보기로 멸치의 크기와 모양을 들여다보고 ‘B급’ 멸치를 가리는 작업을 네 단계에 거쳐 진행했다. 이들이 고른 최상급 멸치들을 놓고 최고참 격인 15년 경력 권성자 씨는 최종 과정인 ‘수놓기’ 작업을 시작했다.

‘수놓기’는 몸이 곧고, 비늘이 훼손되지 않고, 눈이 제대로 박힌 멸치만 골라 한 마리씩 상자에 가지런히 담는 작업. 마치 수를 놓는 것과 같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해 작업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이렇게 담긴 멸치들은 몸의 크기나 용기에 담긴 ‘자태’뿐 아니라 눈알의 각도까지 일정해 보였다.

그 곁에서 이제왕 현대백화점 건식품 담당 바이어는 최종적으로 담긴 멸치들을 다시 한 번 돋보기로 들여다봤다. 그는 “아래쪽과 위쪽에 담긴 멸치의 크기가 동일한지 보기 위해 100세트 전량을 전수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올해 설 선물은 ‘진정성’이 화두


현대백화점 바이어들은 올해 설부터 선물세트 보관 및 포장업체에 대한 일제 현장 점검에 나섰다. 자율적으로 진행됐던 공정에 강제성이 부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최근 열린 최고경영자(CEO)그룹 회의에서 “고객의 신뢰 확보 차원에서 설 선물세트의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의 품질이 동일하도록 ‘진정성’을 강화하라”고 강조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하병호 현대백화점 사장은 이에 맞춰 “0.1%의 오점도 생기지 않도록 하라”며 현장 점검 강화를 지시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설 선물세트 테마를 ‘종가의 음식이야기’로 정했다. 종가 음식은 이 백화점이 통상 명절 선물세트 카탈로그의 커버스토리로 실었던 정육 상품을 밀어내고 처음으로 첫 페이지에 실리기도 했다. 신세계는 1년 전부터 종가문화연구소와 함께 전국에 흩어져 있는 종가 130여 가구를 직접 방문해 13가구의 아이템을 상품화하기로 했다. 충청북도 보은군의 보성 선씨 영홍공파 21대 김정옥 종부의 씨간장 등이 최종적으로 선정됐다. 우동숙 조리식품 바이어는 “가족을 위해 정성 들여 만든 종가 음식의 ‘진정성’을 선물을 받는 고객에게까지 전달하려는 시도”라고 상품 개발 취지를 설명했다.

○ 맞춤형도 또 하나의 트렌드

롯데백화점은 백화점 업계 최초로 3대 전통한우인 칡소, 흑소, 황우를 하나의 선물세트로 모은 ‘전통 한우 3선 세트’를 100세트 한정 판매한다. 제주흑소의 등심과 불고기거리, 울릉칡소의 안심 채끝 국거리, 황우의 등심과 불고기거리를 한데 모은 ‘맞춤형 상품’이다. 또 갤러리아백화점은 처음으로 여성을 타깃으로 한 와인, 과일 혼합 세트를 내놓았다. 여성 고객의 취향을 분석한 뒤 ‘맞춤형 상품’을 강화한 것이다.

매년 맛, 품질, 위생 등으로 치열한 차별화 경쟁을 펼쳐온 백화점 업계가 올 설을 앞두고는 ‘진정성’과 ‘고객 중심 서비스’를 테마로 건 것은 ‘공급자 중심’의 경쟁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자체 평가 때문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경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된 올 설에는 품질 관리와 서비스에 더욱 무게를 두게 됐다”고 말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김슬기 인턴기자 숙명여대 경영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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