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롤스로이스’ 어디로 가는가, 이보크 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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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5일 14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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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지로버 이보크(Evoque)는 당장이라도 앞으로 달려 나갈듯 날카로운 디자인과 역동적인 주행감각을 선사하지만 랜드로버의 독창적인 감성을 전달하기에는 생김새부터 적잖은 이질감이 든다.

과감한 크로스 쿠페 디자인은 SUV에 대한 새로운 기준뿐 아니라 향후 랜드로버 브랜드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다.

40대 기혼남 A씨는 “레인지로버는 각진 외모에 투박한 듯 육중한 맛이 매력인데 이번 모델은 세련된 이미지만 남아 고유의 맛을 잃은 것 같다”고 했다. 반면 30대 미혼녀 B씨는 “기존 랜드로버에 매력을 느껴왔지만 큰 차체와 투박한 디자인이 별로였는데 이보크는 다르다”며 콤팩트한 차체와 디자인이 매력이라고 했다. 이보크의 공식 판매를 앞두고 소비자들의 평은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파격적인 외관과 함께 과감한 체중감량을 통한 차체와 다운사이징 된 엔진에 대해 기존 마니아층에선 의구심을 가졌고 반대로 이러한 것들이 새로운 소비자들에겐 매력으로 작용했다. 문제는 이번 모델이 랜드로버의 우성인자를 얼마만큼 담고 발전적인 진화를 거듭 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해답을 위해 이보크를 경험해 봤다.
시승차는 가장 상급트림인 2.0리터 ‘Si4 다이내믹 쿠페’. 외관은 트림 이름처럼 ‘다이내믹(dynamic)’이란 단어가 가장 적절하게 어울린다. 어디를 봐도 군더더기 하나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쿠페 SUV’란 표현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3도어 방식의 SUV는 전례를 찾기 힘든 새로운 차종으로 특별한 경험을 전달한다.

전면은 천공패턴의 그릴과 날카로운 헤드램프가 자리하며 일반적인 랜드로버의 투박하고 큼직한 것들과는 다르게 도심형 SUV 컨셉에 맞게 축소하고 가다듬었다. 측면은 후미로 갈수록 독특하게 기울어진 루프와 솟아오르는 허리라인으로 날렵한 인상을 풍긴다. 후면은 다부진 범퍼와 날렵한 리어램프, 스포일러가 전체적으로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였다.먼저 2열 시트에 앉았다. 일반적인 세단형 쿠페에선 당연히 버려지는 좌석이지만 이보크는 어떨지 궁금했다. 쿠페의 전고는 1605mm로 5도어 모델에 비해 30mm 낮으며 공차중량도 트림 중 가장 가벼운 1790kg이다. 보다 날렵한 형상을 위해 과감히 전고와 중량을 낮췄다.
탑승을 위해서 보조석의 레버를 당기면 좌석이 접히며 승차공간이 확보된다. 일반적인 랜드로버 차량에 비해선 낮고 세단에 비해선 높은데 승하차시 불편함을 느끼진 못했다.

실내에 들어서 강렬한 붉은색 시트에 앉아보니 착좌감이 부드럽고 편안하다. 앞좌석 승객이 여유롭게 앉아도 뒷좌석 무릎공간이 남았다. 뒤쪽으로 갈수록 차체가 낮아지는 특성상 머리 위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으나 넓은 파노라믹 루프로 인해 답답함은 덜하다. 운전석에 앉은 동행자는 파노라믹 루프가 마음에 들었는지 열어보려 룸미러 위쪽 버튼을 이리저리 조작해 본다. 하지만 당연히 열리지 않는다. 확 트인 개방감만을 위한 옵션이다.

뒷좌석 시트를 조작해 봤더니 6:4 분할 접이 방식이다. 한쪽 시트를 접고 트렁크 공간을 봤더니 SUV치곤 작게 느껴진다. 하지만 트렁크 공간은 최대 1445리터까지 확장 할 수 있다.뒷좌석에서 내려 스티어링 휠을 잡아봤다. 기존 엔진에서 다운사이징 된 신형 2.0리터 터보 직분사 엔진을 탑재한 쿠페형 모델은 최대출력 240마력, 최대토크 34.7kg.m의 성능을 발휘하며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7.6초 만에 도달한다. 콤팩트한 알루미늄 엔진은 기존에 비해 40kg 가벼우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 개선했다.
인테리어를 살펴보니 역시 프리미엄 브랜드답게 단순하지만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실내는 거의 모든 표면을 부드러운 가죽으로 마감하고 깔끔한 이중 박음질 장식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센터페시아 상단 8인치 고화질 터치스크린은 그 어느 것보다 마음에 든다. 화질이 최근 시승해 본 수입차중 가장 뛰어났으며 국내 지니맵을 사용한 설정은 익숙한 조작을 가능케 했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시스템이 켜지며 센터콘솔의 드라이브 셀렉트 다이얼이 솟아오른다. 재규어 차종에서 보던 방식으로 조작감과 편의성은 우수하지만 오프로드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랜드로버에선 낯설게 여겨진다. 사용자에 따라 일반적인 기어박스 시스템과 호불호가 나뉠 듯하다.

고속도로 진입에 앞서 국도에서 중속토크와 핸들링을 경험했다. 저속에서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조작해 보니 특유의 묵직함이 덜하다. 기존 유압방식에서 손실되는 동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랜드로버 차종에선 최초로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특유의 감각은 사라졌지만 조향감각은 여전히 예리하게 잘 맞아떨어진다.
가속페달의 응답성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며 약간의 발놀림에도 차체가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듯하다. 높은 영역의 RPM을 사용하며 주행을 하다보면 스포츠카에서나 경험할 법한 엔진음이 운전자를 자극한다.

80~130km/h의 이르는 중고속 구간은 놀라운 가속성능을 보여준다. 고속도로에 진입 전 완만한 코너링 구간에서 약간의 탄력을 받고 감속 없이 진입을 해봤다. 도로를 움켜쥐듯 날카롭게 빠져나가는 핸들링과 접지력이 탁월하다. SUV 특유의 차체 쏠림현상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쭉 뻗은 고속도로에서 가속페달에 힘을 실어봤다. 180km/h까지 거침없이 가속이 붙는다. 중간 중간 패들시프트를 이용해 변속하며 속력을 올려봤더니 변속타이밍이 즉각적이다. 단 패들시프트의 플라스틱 재질감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고속에서 브레이크의 응답성과 차체의 안정성도 역시 믿음이 간다. 다만 쿠페 디자인으로 인해 사이드 미러를 크게 만들어 120km/h 이후에서 들려오는 풍절음이 거슬리며, SUV 특유의 넓은 전면 시야확보에 대한 이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운전석에 앉아 주행을 경험하다 보면 이보크는 사실 SUV라기 보다는 고성능 세단이나 스포츠카에 가까운 인상이다. 랜드로버의 장기인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을 탑재해 오프로드 기능에 대한 배려와 레인지로버만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계승한 디자인 요소를 반영했다고는 하지만 랜드로버의 탈을 쓴 재규어 같은 느낌이다. 혁신에 가까운 변화와 다방면에서 매력을 발산하지만 랜드로버만의 특성을 잃어가는 느낌이 아쉽다.

판매가격은 2.0리터 Si4 다이내믹 쿠페 9090만원, 2.2리터 SD4 프레스티지 5도어 7710만원, 2.2리터 SD4 다이내믹 5도어 8390만원, 2.0리터 Si4 프레스티지 5도어 8210만원이다.

김훈기 동아닷컴 기자 hoon14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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