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경기 고양시 배다리박물관을 찾은 맥캘란 총괄 디렉터인 데이비드 콕스 씨(왼쪽)
가 배다리술도가의 박관원(가운데), 박상빈 씨 부자에게서 전통 방식으로 청주를 숙성
시키는 과정에 대해 듣고 있다. 맥시엄코리아 제공
파란 눈의 스코틀랜드인은 감탄사를 쏟아냈다. 쌀을 빻는 기계와 누룩을 일정한 모양으로 만드는 틀, 청주 잔, 2m가 훌쩍 넘는 5000L들이 숙성 통을 앞에 두고 계속해서 질문을 해댔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막걸리 잔 앞에 앉아 있는 동상 앞에서는 막걸리에 얽힌 박 전 대통령의 일화에 귀를 기울였다.
15일 경기 고양시 배다리박물관. 100여 년에 걸쳐 5대(代)째 전통주를 만들어 온 배다리술도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 곳곳을 둘러본 주인공은 싱글몰트 위스키 브랜드 맥캘란에서 상품 기획을 맡고 있는 데이비드 콕스 씨(48)다.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46만 달러(약 5억2000만 원)에 팔리며 화제가 된 위스키 ‘라리크 서퍼듀’를 기획한 주인공이다.
한 병에 2300만 원인 위스키 ‘라리크 스몰 스틸 에디션’ 출시를 기념해 방한한 콕스 씨가 배다리술도가를 이끌고 있는 박관원(79), 박상빈 씨(48) 부자(父子)를 찾은 이유는 단순했다. 술을 기획하는 게 자신의 일인 만큼 한국 전통주의 역사와 진화 과정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콕스 씨는 한국 전통주가 처한 상황을 들은 뒤에는 자신의 기획 노하우를 박 씨 부자에게 전수했다. 스코틀랜드 전통주인 위스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기획자가 한국의 전통주 제조업자에게 한 수 가르쳐준 것이다.
1915년 문을 연 배다리술도가는 4대째인 박관원 회장이 이끌던 1966년부터 1979년까지 청와대에 막걸리를 납품했다. 1998년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소 떼를 몰고 방북할 때 이곳의 막걸리를 들고 간 데 이어 2000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만찬주로 쓰이면서 ‘통일막걸리’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막걸리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배다리술도가의 매출은 연간 10억 원이 채 안 된다.
콕스 씨는 “맥캘란은 1998년부터 역사를 정리해 제품마다 탄생 배경 등 스토리를 입히는 작업을 해 큰 효과를 봤다”며 “100년 전통의 배다리술도가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항아리나 술독 등 한국의 전통 디자인을 활용해 패키지를 만드는 등 포장에도 신경을 써야 프리미엄 이미지를 얻게 된다고 강조했다.
싱글몰트 위스키도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선 크리스마스 때 가족끼리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큰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면서 오히려 해외에서 인정받고 그런 이미지가 스코틀랜드로 역수출됐다. 콕스 씨는 배다리술도가도 해외진출 전략을 세워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낯선 손님이 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말없이 따라다니기만 하던 박관원 씨는 콕스 씨가 막걸리를 시음하는 모습을 보자 달라졌다. 50년 넘게 술을 만들어 온 장인의 자존심이 깃든 얼굴로 자신이 만든 술의 장점을 콕스 씨에게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전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면서 콕스 씨는 흐뭇한 표정으로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국 전통주가 세계화돼 스코틀랜드에서도 이 멋진 맛을 다시 경험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