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열전]65년째 ‘어란’ 만드는 김광자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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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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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처럼 수백번 쓰다듬어야 제맛 나제”

‘어란 명인’ 김광자 할머니가 5일 전남 영암군 자택에서 어란을 살펴보고 있다. 어란은 간장을 푼 물에 담가 다갈색을 띠며 참기름을 여러 차례 발라 윤기가 흐른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어란 명인’ 김광자 할머니가 5일 전남 영암군 자택에서 어란을 살펴보고 있다. 어란은 간장을 푼 물에 담가 다갈색을 띠며 참기름을 여러 차례 발라 윤기가 흐른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여학교를 졸업한 19세 과수원집 막내딸이 전남 영암군으로 시집왔다. 시할머니 때부터 숭어알을 건조시켜 어란(魚卵)을 만들어 오던 집이었다. 시어머니의 어깨너머로 어란 만드는 것을 익힌 새댁은 이내 작업을 돕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새댁은 ‘어란 명인’이 됐다. 65년간 어란을 만들어 온 김광자 할머니(85) 이야기다. 김 할머니는 올해도 숭어가 잡히는 4월부터 3개월간 어란을 만들었다. 어란은 조선시대 임금님에게 진상했던 음식이다. 며느리 이옥란 씨(54)도 합류해 어란 만들기는 4대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김 할머니의 손을 보니 지문이 희미했다. 어란은 하루에 4∼6번 뒤집어가며 참기름을 바르고 말려야 한다. 큰 것(알무게 1200g 이상)은 3개월, 보통(250∼300g)이나 작은 것(100g)은 1, 2개월 걸리니 어란 하나에 많게는 500번, 적게는 200번 손이 간다. 오전 4시 반부터 밤 12시까지 작업이 이어지면 지문이 다 닳아 없어질 정도다.

“어란은 애기처럼 살살 자주 쓰다듬어 줘야 제맛이 나제.”

김 할머니의 신념이다. 숭어는 전남 완도, 해남, 무안 등의 갯벌에서 잡힌 것을 사용한다. 갯벌에서 잡힌 숭어라야 고소한 맛이 진하다. 매년 4월, 5∼7t의 숭어를 잡아온 후 바로바로 알을 빼내 어란을 만든다. 냉동 보관한 숭어는 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잡아온 숭어로 곧바로 어란을 만드는 방식을 고집한다. 이 때문에 어란을 만드는 시기는 4∼6월뿐이다. 알은 숭어 무게의 12% 정도로, 말려서 어란을 만들면 숭어 무게의 7%가 된다. 200g짜리 어란을 만들려면 3kg의 숭어가 필요하다.

알은 연한 소금물에 담가 핏물을 뺀 후 간장을 탄 물에 24시간 정도 넣어 빛깔과 맛을 낸다. 건조판에 올린 뒤 목판을 얹어 넓적하게 만든 후 그늘에서 수백 번 뒤집어가며 참기름을 바르는 과정을 반복하면 딱딱하게 굳는다. 크기가 제각각인 알에 맞춰 간장에 담그는 시간을 조절하고 골고루 건조하는 것이 관건이다. 다 만든 어란은 종이처럼 얇게 썰어 술안주로 즐기면 된다.

작업은 모두 집에서 한다. 영암 김 할머니의 2층집에는 집 안은 물론이고 옥상까지 곳곳에 선반이 칸칸이 달린 건조대가 설치돼 있었다. 할머니는 “어란은 마른 정도에 따라서 위 칸에서 아래로 차례로 옮긴다”고 설명했다.

옥상에는 장독대가 가득했다. 어란에 사용하는 간장은 할머니가 직접 만든 것을 쓴다. 얼마나 오래됐는지는 할머니도 모른다. “간장이 시집올 때부터 있었는디 얼마나 되았는지는 나도 몰러. 이럴 줄 알았으면 (시어머니에게) 물어볼 걸 그랬제.”

참기름도 깨농사를 짓는 이웃집에서 깨를 사와 직접 짜서 사용한다. 1999년 해양수산부(현 국토해양부)는 김 할머니를 어란 명인으로 지정했다.

어란은 귀한 분에게 선물하는 용도로 많이 쓰인다. 단백질이 풍부해 남성들이 특히 좋아한다. 김 할머니의 아들 박승옥 씨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여자를 품기 전에 어란을 꼭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귀띔했다. 영암군 영보리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어란을 사용한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김광자 어란’은 신세계백화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200g에 20만 원. 예전에는 해마다 판매되는 양이 들쭉날쭉했지만 판로가 확보되면서 판매량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명이 붙어있을 때까지 만들어야제. 평생 한 거라 하나도 안 힘들어.” 김 할머니는 또렷하게 말했다.

영암=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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