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칫돈 유치 굿샷… “프로 1명이 PB 900명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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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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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LPGA 출신 대우증권 PB마케팅부 한현정 프로

한때 여자 프로골퍼 신지애 선수와 최고 자리를 놓고 다퉜던 한현정 프로가 대우증권 PB마케팅부에 둥지를 튼 지 2년 째. 그는 본인의 장기를 살려 큰손들의 자금 유치에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우증권 제공
한때 여자 프로골퍼 신지애 선수와 최고 자리를 놓고 다퉜던 한현정 프로가 대우증권 PB마케팅부에 둥지를 튼 지 2년 째. 그는 본인의 장기를 살려 큰손들의 자금 유치에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다. 대우증권 제공
“골프선수로는 또래인 신지애 최나연만큼 성공하지 못했지만 프라이빗뱅킹(PB) 업계에서는 꼭 최고가 되고 싶어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소속 선수 출신이자 대우증권 PB 마케팅부의 마스코트인 한현정 프로(23)의 당찬 포부다. 증권회사 마케팅부에 왜 골프선수가 일하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도 종종 있지만 한 프로는 어지간한 PB를 능가하는 뭉칫돈을 유치하는 마케팅의 귀재다.

대우증권은 VIP 고객에게 남다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009년 말 국내 증권사 가운데 처음으로 프로골퍼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했다. 당시 한 프로와 윤지원 프로가 발탁됐다. 이들은 주중에는 스크린골프장에서, 주말에는 필드에서 VIP 고객을 만나 스윙이나 어드레스 자세를 교정해주고 장타를 치는 노하우 등을 전수했다.

이들이 응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큰 키(168cm)를 비롯한 좋은 체격 조건과 젊은 나이 등의 요소를 갖춘 한 프로는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만 240∼250야드여서 장타를 원하는 젊은 자산가들이 특히 만나고 싶어 했다. PB 몇 명이 몇 달간 공을 들이며 ‘제발 돈을 맡겨 달라’고 애원해도 냉담하던 고객들의 마음이 눈 녹듯 풀린 사례가 한두 건이 아니다. 한 VIP 고객은 한 프로와의 라운드 직후 무려 2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을 맡기기도 했다.

대우증권 내부에서도 “PB 900명보다 프로 1명이 더 낫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한 프로의 성과를 주목한 임기영 대우증권 사장이 그의 고과를 평가하는 PB부서 임원에게 “좋은 점수를 주라”고 직접 지시했다는 후문이 돌기도 했다.

한 프로는 1988년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박세리 선수가 외환위기 당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무대를 휩쓰는 모습을 보고 프로의 꿈을 키운 ‘박세리 키드’다. 주니어 시절에는 웬만한 국내 대회를 휩쓸 만큼 우수한 성적을 냈다. 하지만 2006년 프로에 입문한 뒤에는 기대했던 만큼의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그는 “우승은 고사하고 국내 대회에서 7위를 한 게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며 “주니어 시절 같이 뛰었던 또래 선수들이 한국을 넘어 미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급해져 당연히 성적은 더 안 좋아졌다”고 털어놓았다.

방황을 하던 중에 대우증권에서 연락이 왔다. 당시 대우증권 면접은 프로 입단시험 못지않게 까다로웠다. 2, 3개월에 걸쳐 골프실력은 물론이고 매너 외모 평판 고객응대법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선발했다. 그는 “프로선수로 활동할 때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같이 플레이를 하는 프로암(Pro-AM) 대회를 자주 뛰었기 때문에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며 “라운드를 마친 뒤 ‘꼼꼼한 지도가 큰 힘이 됐다’며 휴대전화를 선물하신 고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흐뭇해했다. 하지만 그의 부친은 아직도 그가 프로선수로 대성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않아 그는 1년에 한두 차례 공식경기에 출전한다.

대우증권이 프로골퍼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기 전에도 많은 금융회사가 자체 골프대회를 개최하거나 프로암대회를 열어 일시적으로 프로선수들을 초청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일회성 만남은 프로선수가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골프 초보인 일부 고객은 한 홀에서 무려 20가지 질문을 퍼붓는 ‘진상’을 부리기도 한다. 송석준 대우증권 PB마케팅부 부장은 “일회성으로 초청한 프로선수에게 이런 까다로운 고객을 맡기긴 힘들다”며 “돈은 좀 더 들더라도 기존 VIP 고객의 로열티를 높이고 신규 고액자산가를 유치하려면 이들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프로선수이기 이전에 회사 직원이다 보니 고객들이 더 편하게 느낀다는 것.

대우증권의 프로골퍼 마케팅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자 몇몇 증권사도 뒤따라 프로골퍼를 채용했다. 같이 입사했던 윤 프로가 결혼 후 퇴사하면서 이제 한 프로는 어린 나이에도 증권업계 프로골퍼 영업우먼 중 최고참이 됐다. 그는 “입사 직후 금융상품에 관해 간단하게 공부하긴 했지만 앞으로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다양한 증권 관련 자격증도 딸 계획”이라며 “단순히 고객에게 골프 노하우만 알려드리는 게 아니라 금융상품 지식과 골프 노하우를 같이 제공할 수 있는 능력 있는 PB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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