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금융지주회사인 우리금융지주를 이끄는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과 우리금융의 최대 자회사인 우리은행의 이순우 은행장이 우리카드 분사(分社), 매트릭스 조직체계 도입 등 주요 현안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올해 5월 취임한 이순우 행장은 1999년 두 은행의 합병 후 등장한 최초의 상업은행 출신 행장이고, 이팔성 회장은 한일은행 출신으로 우리금융 내부에서는 한동안 잠잠한 듯했던 한일과 상업은행 출신 간 갈등이 재연될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사모펀드 인수와 국민주 발행 등 우리금융의 민영화 방식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조직 내부에 갈등 조짐이 보이면서 우리금융의 오랜 숙원인 민영화 작업이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 우리카드 분사 놓고 신경전
이팔성 회장은 9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의 우리금융 미소금융재단 수혜 점포를 방문한 자리에서 올해 안에 우리카드를 분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전문성이 없는 우리은행 직원이 카드 업무를 맡아 가뜩이나 우리금융에 대한 수익 기여도가 3%에 불과한 우리카드의 경쟁력이 더 하락했다”고 직설적인 평가를 내렸다. 우리금융의 한 관계자는 “은행 내에 카드사가 있으면 은행법에 따라 마케팅 면에서 여러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 3월 KB국민은행으로부터 분사를 마친 KB국민카드를 거론하며 전문 인력의 영입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카드사의 실적을 높이려는 포석이라고 주장했다. 은행의 양대 수익원은 이자와 수수료인데, 카드 부문에서 나오는 수수료가 제대로 받쳐주지 못해 문제가 되고 있다며 “그런 수익구조는 은행과 카드사 모두의 장기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측은 2002년 초 독립한 우리카드가 카드대란을 겪으며 불과 2년 만에 우리은행의 품으로 돌아온 전례를 잊었냐고 반박한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미 카드시장이 포화상태이고 금융당국의 규제도 강화돼 분사해도 강도 높은 영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분사 후 실적이 좋지 않으면 은행이 다시 뒤처리를 해야 한다는 우려도 내비쳤다.
직원들의 반발도 문제다. 분사 뒤 카드부문 전문가를 영입한다 해도 우리은행 직원의 일부는 카드사로 옮길 수밖에 없다. KB국민카드의 분사 당시 약 1300명이 KB국민은행에서 카드로 옮겼으나 이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이 카드사로 가지 않으려고 해 뒷말이 있었다.
○ 매트릭스 조직 도입도 난항
두 사람은 매트릭스 조직 도입을 놓고도 이견을 보이고 있다. 매트릭스 조직은 개별 금융회사가 각각 영업을 하는 게 아니라 지주사 산하 여러 계열사의 비슷한 사업부문을 하나로 묶어 관리하는 체제를 말한다.
2008년 초 하나금융지주가 은행권 최초로 매트릭스 조직을 도입한 뒤 최근 신한금융지주도 이를 도입했다. 우리금융은 지난달 매트릭스 조직 도입과 관련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이를 통해 9월까지 도입 여부와 방향을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만약 우리금융이 이 조직을 들여온다면 우리은행, 우리투자증권, 우리아비바생명 내의 투자은행(IB), 자산관리(WM), 프라이빗뱅킹(PB) 같은 사업부문은 모두 우리금융의 통합 관리를 받게 된다.
매트릭스 조직의 강점은 고객 편의 향상과 시너지 효과 창출이다. 기존에는 기업 고객이 대출, 채권, 주식, 파생상품, 인수합병(M&A) 등의 서비스를 받으려면 은행과 증권사 등을 각각 찾아야 했지만 매트릭스 조직에서는 기업금융 비즈니스유닛(BU)에서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시너지 효과를 거두려면 은행, 증권, 카드, 보험사의 비중이 비슷해야 한다는 게 문제다. 매트릭스 조직을 도입한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성과를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은행 측은 현재 우리은행이 지주사 수익의 89%를 거두고 있는 우리금융 현실에서 매트릭스 조직 도입이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겠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은행 측은 매트릭스 조직에서는 계열사 임원과 BU 임원의 관리를 동시에 받게 돼 해당 직원들의 보고 및 책임 체계에 혼선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우리금융 측은 매트릭스 도입은 금융지주사의 대세이며 성장통이 없는 새 제도는 없다고 반박한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당장 전면적인 매트릭스 조직을 도입하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점진적 도입을 추진할 뜻을 드러냈다.
이 밖에 두 사람은 우리금융의 민영화 추진 주체에 대해서도 다른 속내를 비치고 있다. 이순우 행장은 취임 직후부터 “지주회사에서 큰 방향은 제시하겠지만 우리은행이 초기 단계에서부터 적극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금융인으로서의 마지막 과제를 민영화로 설정해온 이팔성 회장에게는 주도권 싸움으로 비칠 수도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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