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모뉴엘 본사에서 연구원들이 로봇청소기와 로봇청정기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실험에 열중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롯데마트는 지난해 말부터 파격적인 가격의 ‘넷북’, ‘TV 겸용 모니터’ ‘32인치 액정표시장치(LCD) TV’ 등 이른바 ‘통큰’ 시리즈 전자제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20만 원대 넷북과 모니터는 준비한 물량이 첫날 매진됐으며 지난달 말 내놓은 40만 원대 32인치 LCD TV도 한 달 동안 3000여 대가 팔렸다. 롯데마트는 “같은 규격의 삼성전자, LG전자 제품보다 6∼7배가량 많이 팔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제품의 생산자는 이름도 낯선 ‘모뉴엘’이라는 국내 중소기업. 롯데마트와 전략적으로 손을 잡고 ‘통큰’ 시리즈 제품을 내놓고 있다. 2004년 설립된 이 회사는 2007년 연매출 240억 원에서 2009년 1637억 원, 지난해에는 2952억 원으로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모뉴엘은 해외에서 독특하고 창의적인 제품으로 인지도를 높여왔다. 2007년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서 당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이었던 빌 게이츠가 “엔터테인먼트용 PC를 만드는 모뉴엘 같은 회사를 주목하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모뉴엘의 창업자 박홍석 사장(49)은 1989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12년간 삼성전자의 북미지역 영업파트에서 근무한 ‘삼성맨’ 출신이다. 그는 미국인들의 가족 문화 중심에는 TV가 있다는 것에 힌트를 얻어 창업을 결심했다. 당시 나오던 홈시어터 시스템은 너무 비싸 대중화가 어려웠다. 박 사장은 PC에 디지털 비디오 리코더 기능까지 더한 ‘홈시어터PC’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가격은 낮추면서도 자유롭게 녹화 편집할 수 있도록 한 이 제품이 북미 및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성장 기반을 닦았다.
모뉴엘은 이후 ‘기술을 생활에 접목해 모든 세대가 편리하게 즐기는 디지털 환경’을 목표로 연구개발(R&D)에 집중했다. 현재 본사 직원 200명 중 100여 명이 R&D 인력이다. 이 회사는 ‘연구개발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를 철칙으로 삼고 있다. 직원들이 어떤 제안을 하면 회사에선 대부분 ‘해보라’고 지원한다. 박 사장은 항상 직원들에게 “실패는 교훈이고 경험이고 자산이다”라고 강조한다. 실패하더라도 책임을 묻는 법이 없다.
이러한 문화 덕분에 모뉴엘은 세계 최초로 대기전력 소모를 ‘제로(0)’로 만드는 ‘소나무 PC’를 개발했고 ‘로봇 청정기’ 등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해 냈다.
모뉴엘이 CES에서 ‘이노베이션스 어워드’를 받은 제품들. ① 본체에도 화면이 있는 더블스크린PC ②핸들 리모컨이 달린 로봇청소기 ③공 모양으로 디자인된 홈시어터PC ④노인이 비상호출할 수 있는 실버케어 로봇. 모뉴엘 제공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는 모뉴엘의 6개 제품이 ‘이노베이션스 어워드(혁신상)’를 받았다. 중소기업에서는 전례가 없는 성과이다. 같은 전시회에서 모뉴엘보다 매출 규모가 180배가량 큰 LG전자가 12개 어워드를 받은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대단한 성과인지 알 수 있다.
모뉴엘은 2004년 창업 이후 지금까지 퇴사자가 10여 명에 불과하다. 이들도 대부분 육아나 유학 등의 이유로 퇴사했지 회사가 싫어 나간 사람은 거의 없다.
‘모뉴엘’은 프랑스어로 ‘나의’를 뜻하는 ‘Mon’에 박 사장의 두 딸의 영어 이름인 ‘유리’와 ‘앨리스’의 첫 글자를 붙여 만든 이름이다. 그만큼 가족이 중요하고 회사 동료도 가족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족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사장실과 임원실의 문도 항상 직원들에게 열려 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오후 6시 정시 퇴근을 강조하는 것도 가정이 행복하지 않으면 직장도 행복할 수 없다는 박 사장의 철학 때문이다.
강한 해외 영업력도 이 회사의 경쟁력이다. 15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이 회사는 수출비중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 박 사장은 일 년 중 반 이상을 해외를 돌아다니며 직접 바이어를 만나는 등 영업 현장을 뛰고 있다.
26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본사에서 기자와 만난 임명해 전무는 “우리는 아직 작은 회사이지만 꿈은 원대하다”며 “행복해질 수 있는 꿈, 즐겁고 싶은 꿈이라는 가치를 실현해 ‘애플’보다 위대한 회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날도 박 사장은 해외출장으로 자리를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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