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과 금융 사이에 방화벽을 세우는 금산분리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은행을 민영화하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산업자본의 은행 사(私)금고화 방지’가 명분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일부 대기업이 자사(自社) 소유의 금융계열사를 통해 부당하게 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자 금산분리 원칙은 더욱 힘을 받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금산분리 완화’를 분명히 내세웠다. 》 은행 사금고화는 각종 제도로 막을 수 있고 금융이 경쟁력을 갖춰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산업 자본의 유입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실제 현 정권 들어 금산분리가 상당 폭 완화됐다.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2009년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산업자본이 은행이나 은행지주회사의 지분을 소유할 수 있는 한도가 4%에서 9%로 늘었다.
하지만 저축은행 사태가 금산분리 완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당장 국회에 계류된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6월 임시국회 통과가 힘들어졌다.
저축은행 사태가 금산분리 논의에 영향을 미치는 까닭은 저축은행 문제의 본질이 자금의 공급자(금융)와 수요자(산업자본)가 동일인에 의해 지배될 때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의 자체적인 대출심사 기능이 제 역할을 못했던 것은 물론이고 이를 감독해야 할 정부기관까지 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금산분리 완화의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주고 말았다.
이 때문에 그동안 금산분리 완화에 반대해 온 이들은 “2009년에 이뤄진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까지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며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법 개정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이 해법이며 다른 금융회사들은 어떻게 할지도 결정해야 한다”며 “현재 산업자본이 소유한 생명보험사에도 금산분리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저축은행 사태는 개인의 문제인데 그것을 금산분리 방지 구실로 삼는 것은 무리”라면서 “은행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금융과 산업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산분리 완화를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평행선을 달리자 ‘한국 실정에 맞는 금산분리 완화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이 말하는 ‘한국형 솔루션’은 연기금을 활용한 은행 인수 활성화, 금융회사 간 상호 주식보유 허용, 특정 산업자본에 한정한 은행 소유 허용 등으로 요약된다.
첫 번째 방안은 연기금 풀(pool)을 활용해 산업자본이 아닌 국내자본으로 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장려하면 외국자본의 국내 금융 잠식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에서 비롯됐다. 이 방안은 2009년 은행법이 개정되면서 산업자본의 출자비율이 높아도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은행 지분을 9% 이상 소유할 수 있도록 제도화돼 있는 만큼 정책적인 활성화가 뒤따르면 당장 실현 가능한 대책이다.
두 번째 방안은 은행 간 혹은 은행과 금융회사가 서로 주식을 보유하면 외국자본이나 산업자본을 이용하지 않아도 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주장이다. 네덜란드 최대 은행인 ABN암로나 미국의 뱅크오브뉴욕 같은 외국 대형 금융회사들도 상호주식보유(cross-shareholding)로 규모를 키운 곳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공적 성격의 회사가 은행에 투자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금산분리 완화의 해법은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어 공공성 있는 회사들이 은행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밖에 없다”며 “보유 자산이 풍부한 포스코 및 KT나 주식시장에 상장할 경우 현금이 많아질 KT&G 같은 기업들이 은행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국형 솔루션”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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