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위원회가 제조업뿐만 아니라 유통·서비스업종 등 비(非)제조업 분야에 대해서도 ‘중소기업 적합품목’ 신청을 올해 안에 받기로 했다. 이에 따라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및 대형 서비스·유통업체들이 취급하는 전산·사무용 소모품과 상조 서비스, 정보기술(IT) 콘텐츠 등의 품목도 시장 진입 및 확장에 제한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동반성장위 정영태 사무총장(사진)은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안으로 비제조 분야인 유통과 서비스 업종에 대해서도 중기 적합품목 선정을 위한 말뚝을 박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현재 30여 명에 불과한 동반성장위 사무국 조사인력을 조만간 더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반성장위는 지난달 27일까지 두부, 장류, 주물, 금형, 레미콘 등 제조 분야에 한해서만 중기 적합품목 신청을 받았을 뿐 유통이나 서비스업 등 비제조 분야에 대해선 일정과 절차를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당초 중소기업계에선 제조업 적합품목 신청에 예상을 뛰어넘는 230건이 몰리면서 연내에 비제조 분야 적합품목을 신청받기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아이마켓코리아(삼성 계열)와 서브원(LG 계열) 등 대기업 MRO 업체를 둘러싼 사회적 비판이 불거지고 중기 단체들의 적합품목 신청 요구가 거세지면서 동반성장위가 속도를 내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동반성장위의 다른 관계자는 “동반성장 대책이 점차 가시화되면서 대기업들의 중소기업 업종에 대한 진출과 대응이 빨라지고 있다”며 “시간을 더 늦추면 적합품목 지정의 효과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중소기업계에선 대기업 MRO들이 공공기관의 사무용 소모품에까지 손을 뻗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최근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이 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 보호에 앞장서야 할 공공부문마저 2008∼2010년 3년간 대기업 MRO를 통해 415억1038만 원 상당의 소모품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기업 MRO들은 그룹 계열사로부터 ‘일감 몰아주기’ 혜택까지 보고 있어 공정위가 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이 때문에 삼성계열 아이마켓코리아는 지난달 25일 계열사와 1차 협력업체 이외에 신규 거래처를 확보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유통업계에서는 대기업슈퍼마켓(SSM)에서 파는 일부 품목이나 자판기 유통사업 등이 중소기업 적합품목으로 선정될 수도 있다. 최근 SSM의 추가 출점을 제한하는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과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유통 대기업들은 기존 편의점에 식품코너 등을 확장해 법망을 교묘히 피하고 있기 때문에 SSM의 골목상권 진입에 대한 동네 슈퍼마켓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이에 따라 동네 슈퍼마켓들이 일부 식품류에 대한 적합품목 신청을 통해 콩나물 등은 SSM이 팔지 못하도록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제조업에 비해 유통이나 서비스 업종 중소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여건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유성기업 파업으로 인한 현대·기아차의 생산 차질에서 볼 수 있듯 제조업은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공급망이 비제조 분야보다 훨씬 긴밀할 수밖에 없다. 반면 유통, 서비스 업종에선 대기업이 하청업체들을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바꿔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와 함께 중간재를 거쳐 최종 제품에 이르기까지 실물이 오가는 제조 분야와 달리 서비스업 등은 무형의 상품이 거래돼 불공정거래를 객관적으로 입증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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